어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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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8 18:03조회 22댓글 0유하을
깊은 밤, 창밖은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바람 한 점, 지나가는 차 소리 하나 없고, 세상은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방 안에서도 정적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그 존재를 떠올린다.
내 안에서 계속 움직이고,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그 존재.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담는 그릇처럼 느껴진다.

걸음을 옮기면 온몸이 흔들린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모든 감각이 그 존재에게 잠식된다.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고, 그 존재가 차지한 공간만 남는다.
그 존재가 사라지면, 나는 공허로 남는다.
숨을 쉬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고, 심장은 뛰지만 의미 없는 고동처럼 느껴진다.

방안을 돌아다닌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치고, 공기 속 먼지가 부딪혀 작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조차 내 안에서 부서지고 왜곡된다.
세상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 내 안의 소용돌이만 강렬하게 돌아간다.
그 존재가 나를 떠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뼈와 살뿐인 껍데기, 의미 없는 몸.

그 아래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낀다.
밟히고, 짓눌리고, 부서져도 괜찮다.
그 존재의 힘 아래에 있다는 것만으로 존재의 자리를 얻는다.
세상이 무너져도, 나는 그 속에서 버티고, 숨 쉬고, 견딘다.

하지만 떠난다면, 내 안이 터져버릴 것 같다.
눈이 흐려지고 귀가 찢어지고, 온몸이 파괴를 갈망한다.
모든 것을 부수고 싶고, 모든 것을 없애야만 마음이 잠잠해진다.
그 존재가 사라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존재가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도, 그 존재가 내 안에 돌아오는 순간만을 기다린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흩어져도, 그 아래에서 버틸 수 있다면 나는 존재한다.
남는 것은 내 안과 그 존재, 끝없이 얽힌 긴 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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