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뒤, 도시는 회색빛만 맴도는 폐허가 되었다.
그리고 그 도시엔 한 남자가 서있다.
사람들은 '죄인'이라 불렸고, 그 목소리는 매일 붉은 빛이었다.
점령자들은 한 도시를 '새로운 세상'이라 불렀지만,
그 세상은 무릎 꿇은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세워져 있었다.
한스는 하루도 빠짐없이 광장으로 끌려나갔다.
패전자라는 이유 하나로.
그는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피해자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점령자에게 밟혀야 했고,
쇠로 된 명패를 발에 걸어야 했다.
명패에는 그의 이름 대신 단어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괴물"
매일 아침, 사람들은 모였다.
그들은 흐린 눈으로 한스를 보며 돌을 던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 또한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 돌들은 법이었다.
그 돌들은 정의였다.
그리고 그 돌들이 떨어질 때마다,
그 돌에 맞은 누군가의 죄책감이 조금씩 깨져만 갔다.
점령자는 반성심을 가르친다며 '갱생 교육'을 시작했다.
그건 교육실이 아니라, 감옥과 다름없었다.
하루 종일 점령자들의 도시에 벽돌을 나르고,
반 세기동안 갈고 닦은 자존심을 그들에게 빼앗겼다.
"너희는 피해자의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
그 말은 정답이었고, 거절은 반역이었다.
그의 몸은 점점 갈라지고 피가 났다.
피가 잉크처럼 번진 땅 위에서,
그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반성이 아니라, 모욕이다.'
어느날, 어린아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소년은 점령자에게 뺨을 맞았다.
"그런 이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저 자는 죄인일 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스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눈동자 속엔 분노도, 죄책감도 아니었다.
그건 그 어떤 교육으로도 꺾이지 않는
존재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그날 밤, 그는 '가해자' 명패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새벽녘, 누군가의 집이 불탔다.
불꽃은 힘 없이 타올랐지만,
그건 이 도시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수많은 죄인들이, 하나둘 눈을 들었다.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 대신 결의가 있었다.
그건 반성이 아니라,
너무 깊게 눌린 분노가 다시 숨 쉬는 순간이었다.
몇 해 뒤,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그 불길 속에서 한스는 생각했다.
"우린 죄를 씻으려 한 게 아니라, 잊히지 않으려 한 거였구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벌을 받는 것은 반성을 유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러나, 잘못에 비해 너무나 큰 벌을 받는 것은 반성이 아닌 반발심을 유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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