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의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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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4 15:36조회 15댓글 0미드나잇
오뉴월의 삼겹살

​오뉴월의 햇살이 잔인하다. 그 햇살 아래 서 있으면 내가 사람인지, 불판 위에 올려진 선홍빛 단백질 덩어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으니 어지럽다. 나는 오늘도 그 뜨거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노포 식당의 검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사장님, 여기 생삼겹 2인분이요. 아, 공깃밥은 하나만 주세요."

​주문을 마치자마자 내 앞에는 철제 불판이 놓였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다 태워버릴 듯한 기세로 달궈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등장한 삼겹살 세 줄. 녀석들은 비계와 살코기가 아주 정직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마치 내 인생의 고통과 기쁨이 5대 5로 배분된 것처럼.

​치이익-

​불판에 닿는 순간 들리는 그 비명. 아니, 그것은 환희의 찬가였을까? 오뉴월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불판 위에서 삼겹살은 자신의 몸을 비틀며 뜨거운 기름을 쏟아냈다. 그 기름은 사방으로 튀어 내 안경알에 내려앉았고, 나는 세상을 조금 더 뿌옇게 바라보게 되었다.

​"야, 너 너무 바짝 익히는 거 아냐?"

​함께 온 친구가 핀잔을 줬지만 나는 집게를 놓지 않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경지. 그것은 인고의 시간을 견딘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훈장이다. 뜨거운 열기를 견디다 못해 갈색으로 변해버린 삼겹살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뜨거운 불판 같은 세상 위에서 몸을 뒤집으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 수 없다. 적당히 익었을 때 집어 먹히지 않으면 금방 타버려 버려지는, 유통기한 짧은 열정들처럼 말이다.
​나는 상추 한 장을 손바닥에 펴고 그 위에 잘 익은 고기 한 점과 생마늘, 그리고 쌈장을 듬뿍 얹었다. 입 안 가득 쌈을 밀어 넣었다. 턱이 빠질 듯한 고통 뒤에 찾아오는 밀도 높은 행복. 뜨거운 마늘 향이 비강을 때리자 눈물이 찔끔 났다.

​"매워?"
친구가 물었다.
"아니."

​오뉴월의 길고 긴 해가 질 때쯤, 불판 위에는 타버린 비계 조각 몇 개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내일이면 나는 다시 뙤약볕 아래로 나가 뜨거운 세상의 불판 위를 굴러다니겠지만, 괜찮다. 내 몸속 어딘가엔 오늘 섭취한 고귀한 지방질이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 줄 테니까.

​삼겹살이 내게 말을 걸 일은 없겠지만, 내 식도에는 묵직한 가르침이 남았다.

인생, 결국 타기 전에 뒤집는 놈이 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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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목이 좀 감성소설 같은 '오뉴월'이랑 약간 병맛느낌있는 '삼겹살'이 뭔가 좀 안 어울리잖아요. 어떻게 소설제목이 오뉴월의 삼겹살..? ㅋㅋ
요즘 좀 언뜻 보기엔 이게 뭐지? 싶은 내용인데 자세히 보면 뜻이 있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ㅎㅎ
당분간 이런 글 좀 쓸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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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urious.quizby.me/xH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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