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에 저장한 노래들을 반복 재생했다. 질리게 들은 노래가 기계음과 함께 들렸다. 그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이 생각났다. 그 감정이 그대로 넘쳐 흘러서 열이 났다. 열이 빠르게 몸을 삼켰다. 몰려오는 두통에 진통제도 없이 감겼다. 식은땀이 났다. 마지막 열병이 시작되고 있었다.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이닥쳤다. 몸에 연결된 줄이 더 늘었다. 온갖 기계가 내 몸에 매달려 있었다.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내 옷을 벋기는 손길이 차가웠다, 아니 그걸 벋긴다 할 수 있을까. 내 옷을 모두 찢었다. 아니 그거 다 댁들 재산이잖아·····. 환자를 살리겠다는 정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고맙네요. 날 살려줘서.
나를 얼음물에 담궜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열이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지 나를 다시 옮겼다. 인파를 스치며 다급하 누군가와 전화하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미안하다는 말을 뱉었지만 소음 속에서 누나에게 닿지 못했다.
기계 소리가 시끄러워서 다 꺼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몸에 주렁주렁 달린 줄을 빼낼 힘도 없었다. 낯선 얼굴들이 계속 보였다. 이들을 찾는 게 아니야. 나 때문에 정신없는 사람들을 제치고 하염없이 병실 문만 바라보았다. 자꾸 눈이 감겨서 입술을 꾹 물었더니 피가 터져 나왔다. 끼고 있는 호흡기 바닥으로 비린 피가 고였다. 역해서 토할 것 같아. 계속 눈을 뜨라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요····.
병실 문이 열렸다. 흰 티에 회색 바지 하나만 입은, 개새끼가 뛰어 들어왔다. 이제야 개새끼를 눈에 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묶은 똥머리가 달랑거린다. 슬리퍼 안에 든 흰 양말. 무표정이라도 입꼬리가 올라간 입술. 얇은 코. 평소라면 동그란 앞머리가 핀과 함께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또···· 눈.
울고 있었다.
개새끼가, 아마 나 때문에, 울었다. 너는 그 작은 몸으로 인파에 밀리며 나에게 뛰어왔다. 봐, 너를 보려고 나 아직 눈을 뜨고 있어. 개새끼는 숨을 몰아쉬며 피가 흐르는 내 입술을 응시했다. 그 순간 입술에 쓰라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가 고인 턱이 따뜻했다. 네 시선은 언제나 따뜻했어. 너는 떨리는 목소리를 뱉었다.
- 이게 뭐야·····.
- 울지 마.
- ····· 미안해.
선명하던 목소리들이 점점 멀어진다. 네 목소리도, 의사의 목소리도. 다. 네가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이런 나라서 미안해.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몸에서 열기 대신 한기가 느껴졌다. 눈 앞이 아득해졌다. 갑자기 훅, 하고 열기가 몰려왔다. 나는 소란 속에서 고요히 눈을 감았다. 눈을 뜨기 두렵다. 니 표정이 두려웠다.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눈을 뜨지 못했다.
질퍽질퍽열병
또, 또 불구덩이다. 아직 네가 그곳에 서 있었다. 있어줄거야? 영원히? 너는 개새끼가 아니잖아. 처음으로 개새끼를 지나쳐 달렸다. 저 멀리,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뛰었다. 숨이 찢어지고, 폐 속에서 뜨거운 피가 튄다. 네 이름이 내 몸을 구워먹는 불씨 같았다. 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기억이 내 발목을 잡는다. 기억이 날 찾아 와.
개새끼.
개새끼.
개새끼.
이은채.
그 끝에는 바다가 있었다. 타오르는 몸을 바다 속에 던졌다. 차가워. 존나 차갑다. 몸에서 느껴지던 화끈한 열기가 식고 얼음장 같은 추위만 내 몸에 남았다. 몸을 움직이니 물이 첨벙거렸다.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꿈이 아닌 것처럼 시렸다. 차가운 파도가 내 목소리를 지웠다.
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
혀끝에 맺힌 네 이름이 피처럼 뜨거웠다. 숨이 거꾸로 들이켜지고, 폐 속이 뜨겁게 쪼개졌다. 네가 웃던 날들까지 이 열이 삼켜버렸다. 나만 너에게 불붙었다. 달아오른 기억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손목 스쳤던 네 체온, 웃음의 결, 손톱 끝의 작은 상처까지. 파도가 내 몸을 씻어내며 속삭였다. 나는 너를 잊을 수 없다.
푸른 바다의 수평선 너머에 빛이 보였다. 환하게 빛나는 빛이. 이미 얼어버린 몸으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쳤다. 빛이 가까워지고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내 열이 지나간 곳에 소금끼가 남았고 더 이상 몸이 타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식어서 차가웠다. 온기도 느낄 수 없는 몸으로 빛에 다가섰고, 내 앞이 환하게 흐려졌다. 너를 껴안고 싶다. 깨어나면······
열이 내리려나.
헤엄을 쳐서, 너에게서 도망쳤다.
어둡다. 그런데 검은색도 아니다. 열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무색, 무음, 무온. 파도가 멀어지고, 심장 소리도멀어진다. 마지막으로 남는 건, 이름 한 줄. 이은채. 내게 하나 남은 건 너의 이름, 그리고 기억. 멈춰달라고 했잖아. 나는 끝까지 너에게 달리다 물에 잠겼다. 꼬르륵······.
너를 사랑한 게 내 마지막 숨이었어. 이은채.
삑 삑 삑 -
- 하지우 환자님.
- 2025년 11월 23일 19시 47분 52초,
- 심정지로 사망하였습니다.
- 순애로 사망하셨습니다.
엉성한 청춘에도 사랑이 있나요?
질퍽질퍽열병?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질퍽질퍽순애
https://curious.quizby.me/ugun… ^ 퇴고 없어요 질퍽질퍽순애로 이어집니다
두더지 = 하지우
개새끼 = 이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