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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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30 19:06조회 57댓글 0귤락
그 싸가지는 전교 일 등이었다. 특히 수학에서는 일 등을 놓친 적이 없는 천재. 실수조차 한 번 없이 시험만 봤다 하면 백 점을 맞아 어느 날은 만년 전교 2등이 그 방법을 물어봤는데, 문제 풀이 시간이 극도로 짧아서 검산을 세 번 끝내고도 시험 시간이 남았더라는 소름 돋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애는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 데다가 싸가지가 없기로 유명해서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난 그 애를 좋아한다. 정확하겐 짝사랑.

“저기, 이 문제는 어떻게 푸는 거야?”
“좀 가줄래.”

그래서 이렇게 틈 날 때마다 들이대는 중.

“수학 문제 물어보는 것도 안 돼?”
“너 수학 풀 줄 모르잖아. 저번에 8등급이라던 거 다 들었거든?”
“그러니까 네가 알려주면 되겠다!”
“난 멍청한 애랑 상종 안 해.”
“너 진짜 싸가지 없는 거 알아? 욕도 되게 많이 먹어!”

그 애는 기가 차단 얼굴로 날 쳐다봤다. 그 안경 너머 동그란 눈이 되게 귀여웠다. 난 마저 웃어줬다. 네가 그렇게 봐도 해줄 말 없거든.

“제발 좀 가줄래…”
“싫은데.”

하 진짜, 하는 짜증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렸다. 어쩜, 목소리도 좋아. 그 애는 거추장스럽다는 듯 의자를 있는 힘껏 내 반대 쪽으로 돌려 앉았다. 그리고 다시, 공부벌레라는 그 악명에 맞게 펜대를 잡아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어쭈, 해보자 이거지.

“근데 수학에도 영어가 있네? lim이 뭐야?”

그 애는 대답이 없었다. 넓은 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그제야 짜증 섞인 대답이 들려온다.

“극한 말하는거야.”
“x가 무한대로 간대!”
“그 말이 정확하게 맞아.”
“나 수학 좀 잘하나 봐!”
“그렇게 생각하던가.”
“그럼, 이건 어때.”

난 그 애가 소중하게 잡고 있는 펜을 뺏었다. 야, 너! 네가 화내는 건 별로 보기 싫은데, 펜한테 딱히 질투를 하는 건 아니고. 쓰고 싶은 식이 있어서.
lim(♡->∞)♡

“내 사랑 방정식이야.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것도 성립되나?”

그 애는 내가 쓴 하트 방정식을 빤히 바라보다 살짝 웃었다. 분명 웃었다. 올라간 입꼬리를 내가 분명히 봤다!

“……이런 거 하나도 성립 안 되거든. 방해하지 말고 빨리 저리 가.”

그리고 그 애는 수학책을 들고 스탠딩 책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 애가 뚝딱거리며 걸어가는 걸 빤히 바라보며, 그 애 뒷목이 벌게진 걸 발견했다.

“수학이구나.”

수학이 답이었어!

언제 마지막으로 꺼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수학책을 들고, 난 그 뒤꽁무니를 쫓았다.

수학은 너한테 배우면 되니까, 수식으로 내 사랑을 표현할게.

일 등급 찍으면 내 사랑 받아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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