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결말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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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7 18:15조회 65댓글 1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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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아! 담아 이것 좀 봐! 짜잔.


한요가 등 뒤에 숨겨둔 초록색 목도리를 꺼냈다. 여기저기 실이 풀린 곳도 많고 솔직히 빈말으로도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목도리지만 노력하긴 한 건지 잘 완성해서 딱 보면 목도리다 싶을 정도로 모양이 빠져 있었다.


- 다 만들었어?
- 응! 선물로 너 줄게.


바보같다. 한요의 거렁뱅이 목도리를 목에 둘렀다. 한요처럼 따뜻했다. 한요가 두 팔로 목을 감싸주는 것 같았다.


- 어때?
- 너무 좋아.


한요가 눈에 띄게 좋아했다. 심지어는 독백도 [너무 좋아]였다.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요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환하게 웃었다. 다행스럽게도 한요의 증세가 급격하게 악화되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냥 기침이 조금 더 잦아지는 정도가 끝이었다.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긴 하지만 한요가 언제 죽을지 아는 나로서는 병세의 진전이 느리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 좋아, 그럼 내가 목도리 줬으니까 오늘 하루 담이는 내 거야.


한요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거칠게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난 속수무책으로 한요에게 끌려갔다. 한요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방호소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개를 했다. 이건 뭐 하는 곳이고 여긴 뭐 하는 곳이야. 그러다 가끔은 키스도 하고. 스킨쉽도 하고. 재밌어보이는 걸 발견하면 같이 놀기도 하고 그랬다. 전처럼 꽃밭에 누워서 뒹굴고. 검은 꽃 냄새도 맡고.


- 고양이 발바닥 냄새 맡고 싶다.


한요는 핵전쟁 전까지 고양이를 키웠댔다.


- 그러고 보니 담아, 너 고양이를 닮았어.


한요는 그러더니 내 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 꽃 같다.


어이가 없어서 벙쪄있는데 한요가 해탈한 얼굴로 웃었다. 꽃밭에 누운 한요의 얼굴이 벌겠다.


- 있잖아. 담아. 우리 내기 하나 할래?
- 무슨 내기?
- 내가 너 놀래킬 수 없는지 있는지로. 난 있다.
- 자신 있나보다? 뭐 걸고?
- 소원권.


난 그때 별 생각 하지 않았다. 한요가 재미로, 그러니까 장난식으로 놀이 같은 걸 하려는 건줄 알았다. 난 한요가 뭘 하든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한요가 아는 건 대부분 나도 알았고, 한요가 모르는 진실들도 난 대부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
-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담이를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불안감이 밀려온 건 그때였다. 설마.


- 그 첫날을 다시 돌아보니까 알겠어, 담아.

- ······

- 저번에 물어봤던 거. 특정한 날에 죽는 사람이 있는데 너라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

- ······

- 그거 나지? 나 죽지?

- 한요야.


한요는 그렇게 말하고 하늘이 떠나갈 것처럼 웃었다. 한요의 손에 검은 색 꽃이 꺾인 채 들려 있었다. 한요는 자연을 사랑한다. 한요는 꽃을 꺾는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 그래, 내가 이겼어, 담아. 내가 언제 죽는지는 묻지 않을게. 조만간일 것 같은데 날짜 알고 몸져눕긴 싫거든.


한요는 날 내버려두고.


- 소원권은 잘 받아갈게.


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뒤늦게 따라갔을 때 한요는 이미 자고 있었다.


한요가 죽기 딱 삼 일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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