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 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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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6 22:59조회 57댓글 0백야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이 늦봄에 하나둘 지어가게 된다면 남게 되는 가지는 다시 올 봄을 기리며 영원을 찾을지도, 늘 그럼에도 조금 아릴지 모를 것이라고. 꼭 나 같다 생각했다. 사랑을 기다리는 형태가, 그러하니까.

긴 밤이 한창이다. 얼굴에 열감이 들며 목이 탔다. 암영 속 너의 우는 얼굴과 작아진 눈빛을 바라보다 숨이 막혔다. 어떻게 나한테 이래, 라고 하지 말아줬으면 했는데. 오히려 내가 할 말이 아닐까 하면서. 너의 말을 귓가에서 흘리며 나는 너와 나 사이 허공을 응시했다. 나에게 매달리던 네 손의 온기가 여전히 어깨에 화끈거리며 남아있었다. 이대로 세상이 멈췄으면.

영원을 찾다 숨이 죽어서는 작게 쉰 한숨에 너는 그만 깨져버리고 말았다. 목구멍에서 울컥거렸던 것이 혀끝까지 번졌다가는, 이내 머리맡에서 일렁이다 희미해져 버린다. 네 앞에서 한껏 작아져 나지막하게 뱉은 미안해— 는, ··· 사랑의 공백 속에 비참해진다. 늘 그런 식이니까,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더 사랑하는 쪽이 나라는 명분에서 나는 네 눈물의 무게를 홀로 받아낸다. 영원에 사랑을 기대고 너를 맡기는 것 아래 내 울타리 안의 너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어쩌면, 네가 정한 믿음의 범주 내엔 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시리고 멀게만 보이는 밤이다.

다른 인연들은 우연을 가장한 사랑을 이루고 영원을 안아가는데도 나는 안 것이 없다. 연인이 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다른 남자들은 당연하듯 품에 안아주는 그런 사소한 몸짓도 내게는 무겁게만 느껴지는지.


· · ·

네가 잠든 새벽, 너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며 느직하게 감긴 눈을 바라본다. 눈물이 지나간 자리 붉어진 눈밑과 젖은 속눈썹이 눈에 띄인다. 나는 핏기가 진 입술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가 그만 밖으로 나간다. 뺨에 찬 공기가 붙는다. 정신이 들었다, 말았다가, 깜빡인다.

숨을 뱉고 술을 들이킨다. 그마저도 무겁다. 낙루 섞인 숨을 뱉는다. 서늘한 냉기가 얇은 옷자락을 뚫고 살결을 스친다. 길게 늘어지며 떠오른 하얀 공기가 이내 눈물 서린 새벽 공기 아래 가려 희미해진다. 공터 저편의 꽃나무에서, 칼바람이 스치자 도화가 일렁이며 물웅덩이 속을 파고든다. 꽃나무의 가지 밑에는 도화의 분홍빛이 비쳤던 흔적조차 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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