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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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15:01조회 102댓글 10조유담
파도는 오늘 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바람조차 속삭이듯 불어오는 오후, 오래된 바닷가 마을에 낡은 조개껍데기 하나가 파도에 실려 밀려왔다.

그건 단순한 조개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듯 반짝이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동자처럼 깊은 빛을 품고 있었다. 아이들은 손끝으로 툭툭 치다 이내 흥미를 잃고 뛰어가 버렸지만, 노파 하나가 그것을 들고 가만히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정말… 오래 기다렸구나”

늘 해질 무렵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를 흥얼이고, 바람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아이들만큼은 그녀 곁에 자주 머물렀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다.
언젠가, 이 바다에서 세상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다시 태어날 거라고. 고요한 물결을 가르고, 바람이 입맞춤을 해주고, 모든 꽃들이 그녀의 발아래 피어날 거라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왔다
새벽, 안개 속에서 조개껍질이 벌어졌다.
피부는 달빛을 머금은 듯 맑았고, 눈동자에는 먼 별빛이 머물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리며 새벽을 부드럽게 깨웠고, 맨발은 모래 위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당신은…” 노파는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그녀는 미소 지었다. 따뜻하고 슬픈, 오래된 기억을 아는 듯한 미소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릴 적 아무도 믿지 않던 이야기를 믿어주던 단 한 사람, 이제는 이름조차 희미한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넌 꼭,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는 끝이 났고
또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해 질 무렵이면 바닷가에 하얀 꽃이 피어났다고.
그 꽃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고.

“누군가의 기다림은 기적이 되어, 이 세상에 온다.”

비너스의 탄생-산드로 보티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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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독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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