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2 08:05•조회 203•댓글 14•hxn
- 순애라고 하기엔, 우리 사랑은 그다지
- 당당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야.
- 그게 네가 날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야?
더럽혀진 날 구원한 건 똑같이 더러운
당신이었다는 걸, 내가 아직 기억하거든요.
붉게 물든 그대 입술은 마치 피와 같아서
공포에 떨었던 그 겨울밤을.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네 손에 묻은 피, 그 위의 검은 장갑.
내던진 칼, 쥐고 있던 그대.
찰랑이며 내려온 짙은 와인색 머리칼보단,
더 짙게 내려앉은 죽음의 습도.
저는 결국 피투성이 손을 잡고 일어났지만,
다시는 그대에게 구원받고 싶지 않거든요,
더러운 나의 순애여.
3일 만에 마신 밖의 공기와 함께 마신
그대의 침과 그대의 립스틱.
내 입에도 피 같은 색이 칠해진 뒤에서야,
그대의 얼굴을 보았어요.
검은 정장은 단추가 꽤나 풀려 있었고
짙은 화장에서 소름이 끼쳤던 그날 밤은,
- 저기, 구해주신 건 감사한데,
- 도망칠거야?
순식간이었다. 그대는 나를 빠르게
감싸 안았고, 그대로 다시 입술을 박았어요.
내 허리를 감싸는 더러운 손길.
내가 그대의 것이 된 듯, 이미 날 가진 듯,
그렇게 굴었잖아요. 그대는,
그대의 입술, 그 위에 피어싱.
그대의 눈가에 짙은 마스카라.
그 밤이 지나고 나서도
나는 달라진 게 전혀, 하나도 없었어요.
그대는 항상 피 범벅이 된 채로 날 불렀고
분명 그대가 사람을 죽였지만,
그대는 울고 있었어요.
- 사랑해 ···.
- ··· 알아요.
그대를 증오해요, 죽도록 증오해요.
하지만 우리는 분명,
사랑을 했던 게 틀림없어요.
그대는 나에게 구원받았어요, 나도 그렇듯.
죽도록 이어지는 애증 관계는,
더러운 순애일 뿐이잖아요.
더러운 나의 사랑아,
제발 다시는 구원받지 못하기를.
_ 그대 부디, 죗값을 치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