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이라는 유토피아(마약 연상 되는 묘사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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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1 20:12조회 82댓글 6검은
은행에서 칼을 돌리는 저 미치광이를 보면 제가 정상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저 날카로운 쇠붙이는 탐욕을 자르고, 체계를 엉키게 만들죠. 그 날카로운 칼은 어지러운 초록색 섞인 붉은색이었고, 연한 초록색 은행을 아름다우면서도 파괴적이게 망치고 있죠.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체계는 뒤엉키다 못해 이제는 깨지네요. 깨지는 모습이 창문 같았습니다. 칼이 창문을 뚫던가? 저는 칼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부억칼이 인간을 뚫는 건 많이 보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것조차도 제가 느낀 거짓인가 봅니다.
저는 은행에서 칼을 돌리는 남자를 보며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원초적인 생존 본능으로 집에 갔습니다. 집은 늘 똑같았습니다. 똑같은 환희, 똑같은 약, 똑같은 거짓, 똑같은 액자, 똑같은 끝자락, 똑같은 절벽.
하지만, 그 똑같음을 견디는 데는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저만의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에 있는 그것, 그것에 있는 그것,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그. 저는 메마른 방을 걷고, 갈색 복도를 걸으며 흰 공허를 만졌습니다. 벽은 더러울 정도로 낙서가 많았습니다. 그 낙서들은 어린이의 끝자락에서 만들어진 죽음이었습니다. 어린이는 제가 모르는 여자아이였습니다. 그 붉은 리본을 매단 귀여워 보이는 소녀. 하지만 우울함도 있었죠. 우울함이 그 리본을 감싸서 귀여움은 공허가 되었습니다. 심연의 눈동자는 과할 정도로 컸습니다. 누군가 기형적으로 잡아 당긴.
걷다 보면 방에 도착하게 됩니다. 방에서 저는 제 길다란, 개구리 같은 혀에 그것을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넣었습니다. 물방울은 보석처럼 보였고, 나약해 빠진 인간에게 주어지는 건드릴 수 없는 성스러운 구원의 손길 같아 보였습니다.
그것들이 제 혀외 접촉합니다. 구원자는 천한 인간을 세상의 다른 곳으로 끌어냅니다. 그 다른 곳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주변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워 보입니다. 세상은 곧 물결이 됩니다. 물결이 다시 땅을 재구성하고, 땅은 다시 물결이 됩니다. 세상은 곧 과수원입니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 넓디넓은 과수원.
벽에 있던 정체 모를 낙서들은 다시 죽음 어딘가 끝자락으로 가서 노래를 부릅니다.
“웃으면서 화내, 울면서 화내, 아니 화내지마, 울지도 마”, 그들이 제 뇌가 꺼질 정도로 크고 쩌렁쩌렁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노래가 너무 커서 낙서의 노래를 막으려고 끝자락으로 갔더니 그림자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리 가, 저리 가, 저는 지금 목을 자르는 거북이 같잖아, 다시 돌아가“, 그림자는 저를 가리키는 듯 했지만, 제가 아닌 제 뒤에 있는 그것에게 가리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림자의 희고 고운 눈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림자가 뭘 보는 지도 알 수 있고. 아니, 그림자에게 눈이 생겨도 바뀔 건 없습니다.
저는 존재하는 걸 볼 수 없어요. 본다는 것은 존재하는 걸 보는 게 아니더라고요. 진실과 현실은 이미 숲 속의 아름드리 나무로 갔어요. 자연의 울림 속에서 진실을 헤아리는 별들을 우린 현실이라고 부르죠. 그 별들이 천장 위에서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겼어요. 천장은 분명히 삭막한 존재인데, 그때 만큼은… 생명 같아 보였어요. 숨을 쉬는 존재 말이에요.
네, 모든 것에 끔찍한 동시에 아름다운 생명으로 보였어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곳은 생명의 죽음, 빛이 드리운 곳은 생명의 축복이에요. 죽음과 축복은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침묵의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었죠.
저도 통제 불가능한 낙서들과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으러 가야겠어요. 너는 노래 못해, 나는 너 안 괴롭혀. 끝자락으로, 끝자락으로, 끝자락으로. 끝자락은 죽음이 다스리기에 죽음과 협상을 맺어야 해요.
“왜 왔니”
”낙서가 싫어서요“
”그게 왜 이유가 되니?“
”낙서의 노래를 막으려면 와야 되요“
“왜 막아야 되지?”
“거슬려요, 너무나도. 없어졌으면 하는데 없어지지 않아요”
“그냥 가”
기분이 좋은데 싫었습니다. 죽음은 저를 아름답게 지켜주는 동시에 저를 가둡니다. 견고한 방어막인데, 제가 밖으로 못 나가게 만들죠. 밖에 무엇이 있을 지 가늠조차 안 갑니다. 바깥에는 무한함만이 존재할 지도 몰라요. 그래서 문을 열면 계속 떨어지는 거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그랬듯이.
‘너는 왜 그 일에 신경을 쓰니, 이곳은 유토피아야. 행복하잖아, 행복하잖아, 행복하잖아’, 제 또다른 내면이 왜쳤습니다. 사실이에요. 행복해요. 낙서만 빼면 모든게 기뻐요. 죽음은 방어막, 탄생은 과수원이에요.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환희를 따먹는 과수원에 가까워져요. 과수원에서 황금 사과를 따먹을 수도 있어요. 흰 토끼와 탱고를 추며 놀 수도 있어요. 붉은 스페이드 카드를 들고 검은색 토끼와는 포커를 쳐요. 어머나, 제가 이겼어요. ?이라는 문양이 새겨진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요. 어머니가 웃어요. 이를 잔뜩 드러내고. 어머니는 저를 좋아하세요.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인지는 의문이에요. 아니, 그런 걸 고민할 시간에 이곳의 신아에 올라가서 울부짖을래요. 기쁨과 환희를 울부짖으면 돼요. 회색 늑대처럼요. 거짓을 노래하는 새들과는 다르게 진실을 울부 짖고 싶어요. 회색 늑대에게 물어봅시다. 회색 늑대는 자신의 갈기를 가다듬는 데 집중해요. 매우 중요한 과정이거든요. 늑대에게는 갈기가 없다고요? 그건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만 존재해요. 늑대도 갈기가 있어요. 회색에서 붉은색 그 사이 색들이에요. 이곳은 한계가 없어요. 이런 과수원에서 계속 노는 방법도 매우 간단해요. 물방울을 더 가져가 계속 과수원에 물만 주면 돼요. 간단하죠?
네, 저는 과수원에서 계속 놀았어요. 붉은 립스틱을 대강 칠한 입술이 혈흔 묻은 칼이 될 때까지 논 것 같아요. 물방울을 계속 혀에 넣었고요. 과수원은 넓은 대지 아래에 있는 느낌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늘 위에 있어요. 하늘나라 위에요. 구름 사이에 있어요. 황금색 대지가 거짓 아니고 진실 되게 펼쳐져 있어요. 아름다운데, 너무 넓어요. 놀 것도 많아서 다행이에요. 황금 사과도 있고, 포카 카드도 있고, 토끼들도 있고, 어머니도 있어요. 다 있어요. 나쁜 것들 빼고요. 회사도, 학교도, 아버지도, 소녀도, 가위도, 총도, 그 무엇도 없어요. 웃을 때까지 웃어도 되요. 제 웃음소리를 듣는 나쁜 사람은 없거든요.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남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소리조차도 안 들려요. 입술이 칼처럼 변해가는데, 웃음을 멈출 수가 없어요. 너무 좋은데 싫어요. 좋은데 싫어요. 좋은데 싫어요. 좋은데 싫어요. 좋은데 싫어요. 좋은데 싫어요.
아… 다시 깨어나요. 과수원에서 떨어지고 구르고, 다시 떨어지고 구르면 죽음으로 와요. 몸이 저절로 움직여요. 늘 그랬듯이, 제 의지는 곧 풍선 속 바람인 채로. 다시 어두운 죽음을 거쳐, 소녀가 그린 낙서들의 노래를 거쳐, 왠지는 모르겠는 마지막 발악인 제 부정을 거쳐, 현관으로 와요.
현관으로요. 현관은 비유 아니에요. 그냥 현관이에요.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관. 현관. 현관. 말이 너무 삭막해서 싫은데, 물방울만 뿌리면 나아질 것 같아요. 현관에는 신발이 많으니, 발이 많은 지네 친구도 생길 거에요. 지네에게 신발을 다 주어도 모자랄 거에요. 웃고 있는 발냄새 씨도 올 거에요. 웃음이 너무 길어져서 일본도처럼 될거에요. 일본하니까 이곳에 온천 씨도 오면 좋겠어요. 온천 씨가 있으면 전부 익사 당하지 않냐고요? 늑대의 갈기 때와 같네요.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만 그렇게 느끼죠.
하지만, 상상조차도 이제는 안 가요. 방금 전에 느낌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 기쁨과 당당함이 손에서, 손톱에서, 눈알과 눈 사이에서, 빠져나가요. 계속요. 이제 거의 다 떨여졌어요. 이제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현실이 더 잘 보여요. 아니, 현실이 아닌 것 같아요. 가짜여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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