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예쁜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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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9 21:47조회 167댓글 18익애
세상이 멸망하려나보다. 창밖은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뉴스는 연일 재앙을 경고했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은 여전히 술래잡기를 하고, 어둠이 내리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옥상에 올라가 별을 셌다.

예전엔 그냥 '별이 많네' 하고 넘겼을 하늘이었는데, 이젠 왠지 모르게 한 점 한 점이 아프게 박혔다. 우린 다 알았다. 이 별들이 아마도 우리의 마지막 관객이라는 것을.

매일이 무언가의 끝이라는 예감으로 가득했지만, 오히려 그래서였을까. 사소한 것들이 유난히 빛났다. 낡은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먼지 쌓인 멜로디, 친구들과 주고받는 의미 없는 농담,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가로수까지. 모든 순간이 필름처럼 선명하게 박혔다.

어른들은 울거나 절규했지만, 우리는 그저 마주 보고 웃었다. 웃음 속에 작은 절망이 섞여 있었지만, 그걸 모른 척하는 게 우리의 방식이었다. 소년과 소녀의 어깨에 내려앉은 세계의 무게는 때론 버거웠지만, 기어이 견뎌내며 살아가는 것. 그게 아마 이대로의 스무 살인 걸까.

가장 흐릿했던 계절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빛나는 우리였다.

그렇게 시간은 멈춰 선 듯 흘렀다. 하늘은 마침내 마지막 주홍빛을 쏟아냈고, 멀리서 들리던 알 수 없는 소리들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두려움 대신, 묘한 평온함이 감돌았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학교 옥상에 다시 모였다. 서로의 어깨가 닿는 간격으로 앉아, 말없이 마지막 순간을 바라봤다. 더 이상 울거나 슬퍼할 필요도, 미래를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함께 있었다는 것,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공유했다는 것.

어쩌면 이 종말은,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가장 눈부신 청춘의 한 페이지였을지도 모른다고, 소년의 시선 끝에서 소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빛은 서서히 사그라들었지만, 우리 마음속의 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타올랐다.

영원이 한 순간이 되는,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과 함께 침묵했다.




✒ || 익애 || 그 누구보다도 멸망을 잘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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