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4 22:40•조회 189•댓글 2•작가 일동
No.1 소녀
ㄴ 기적
어릴 적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며 기대에 가득 차 설레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잔뜩 상기된 분위기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던 어린 시절의 겨울은 입김처럼 흩어졌고, 세상의 현실을 알아버린 자리에는 쓸쓸함만이 남아 있었다.
착한 아이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데, 착한 아이로만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 많은 선택을 요구한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울면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데, 세상에는 울지 않고 지나가기에는 힘든 일이 너무 많다.
선물을 받고 거기에 기뻐하기에는 어느새 너무 커버린 아이인데, 그 아이는 여전히 그 속에서 살고 있다. 때때로 그 추억을 회상하며 행복에 잠기다가도 어느새 그 속에 파묻혀 우울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는 다른 곳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 했다.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모든 걸 위로하며 감싸주지 않으며, 선물과 따스함이 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거리에 켜진 불빛들을 한 번쯤 올려다보고, 흘러나오는 캐롤을 들으면 오늘 하루만은 조금 쉬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선물을 받지 않아도, 특별한 일이 찾아오지 않아도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모두에게 의미를 주는 날이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도,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다른 이도 저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크리스마스가 그들에게 건네는 의미는 충분히 그것으로 기적이라 불러 마땅하다.
No.2 RmN
ㄴ 하나의 한 하나의 소원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축복을 바랄 수 있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한은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올려다보았다. 거리에는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들이 줄줄이 늘어서있다. 비록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뭐 어떤가.
우주에 있는 성운들 중 하나는 유독 크리스마스 트리를 닮은 성운이 있다고 한다. 그 성운에서 태어난 별들 중 하나는 눈이 내린 풍경일 수도 있으니.
신은 믿지 않지만 전생은 믿는다. 어차피 우리 모두 우주에서 왔다고 하지 않는가. 죽은 뒤에 바다로 돌아가고, 그 바다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고… 잡생각에 빠져 있던 한은 다시 눈앞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봤다.
보고 싶다, 죽은 연인이.
작년 크리스마스는 함께였는데… 올해 크리스마스는, 응.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은 손에 쥔 꽃다발을 만지작거렸다. 아직도 제 손에 놓인 꽃처럼 환하게 웃는 그 애의 얼굴이 선하게 떠올랐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그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
거리를 구경하다가 케이크를 샀다. 맛은 역시나 그 애가 좋아했던 딸기 케이크로. 그러고는 이젠 혼자뿐인 자취방에 돌아와서 혼자지만 둘이서 있는 것처럼 케이크에 초도 꽂고 불도 붙이고 소원도 빌었다.
아무렴, 크리스마스의 기적 따위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차피 혼자 먹을거지만 정성스럽게 커팅한 케이크를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역시 비싼 케이크는 다르다 이건가. 몽실몽실한 구름을 살짝 구운 다음 그 위에 딸기잼을 발라 입안 가득 욱여넣은 기분이다.
그렇게 맛을 좀 미식가처럼 평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하마터면 접시를 깰 뻔했다. … 그 대신 케이크는 떨어뜨렸지만. 이 무슨 죽은 줄 알았던 연인이 돌아왔다—도 아니고.
죽어서 장례식까지 치뤄준 연인이, 지금 내 눈앞에서, 생전 모습 그대로, 무슨 귀신이라도 봤냐—는 표정을 지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귀신이 맞지, 아니… 아니, 살아있었던 건가? 너무 놀라서 무심코 그 하얀 손을 잡았다. 느껴진다, 따뜻한 온기가. 안그래도 수족냉증인데 밖이 추웠는지 손끝이 차가운 것까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죽은 연인의 모습에 덜컥 눈물부터 나왔다.
바보야, 살아있었으면…… 당장 왔어야 할 거 아냐… 왜, 왜…!
혹시라도 이게 꿈일까봐, 내가 진짜 드디어 미쳐서 환각을 보는 걸까봐, 정말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눈 녹듯 사라질 행복일까봐, 그런데도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그런 나를 품에 넣고 우는 아이 달래듯 토닥여주는 그 손길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솜이불로 온몸을 감싼 듯한 따뜻함이 계속 유지되었다.
사랑해. 보고 싶었어. 걱정했어. 고마워. 미안해…
그 품에 안겨 한참을 울던 나는 딸꾹질을 해대며 그간 전해야 했는데도 전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부 전했다.
울다 지쳐 잠에 들던 그 순간까지도 난 산타에게 끝없이 기도했다.
내일 꿈에서 깼을 때 이 행복이 사라지지 않았기를,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졌다면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행복을, 이 온기를 잊지 않기를. 난 그렇게 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하루만 이어지는 짧은 마법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No.3 유건
ㄴ 1225:저장
To. 친애하는 나의 여름
두서가 없는 편지 미안해.
정점에 다다른 겨울이 부서진다. 너무 하얀 눈이 네 눈물에 적셔 녹았다. 절망 섞인 포효가 눈이 되어 세상을 덮기라도 한 것처럼 울었다. 작게 남은 남의 발자국이 미워 짓이길지언정 나는 그대들을 사랑할 수 없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기나긴 겨울은 어김없이 성큼 다가왔고 봄까지는 여전히 아득했다.
눈 앞에 푸른 물이 일렁여 무릎을 붙잡고 털썩 주저앉아 빌어먹을 겨울을 탓했던 시간은 모두 까맣게 덮어서 지웠다. 더러웠던 겨울들은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겨울에 비해 너무 빛이 나는 봄만을 바라보며 살았으니 여름은 얼마나 빛나는지 알 턱이 있었던가.
그의 한없이 시리던 겨울에 트리 가장 위에 놓인 별처럼 추락한 빛이 있었다. 겨울을 증오하고 봄을 갈망하던 그에게 덜컥 다가온 여름이 있었다. 어두워서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던 그의 계절에 드디어 섬광이 일었으니 그 빛이 어찌나 밝던지 눈이 멀어버릴 지경이었다.
낡은 빌라를 한 채 상상해보자. 삐걱거리는 의자와 책상에 놓인 닳고 닳은 책. 밖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 그리고 각자 사랑하는 이들과 거리를 걷는 사람들. 그 기쁨들을 조명 삼기엔 너무 멀어서 킨 전구. 어둠 사이에서 아스러지는 그 빛이 그를 구원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집어삼켰다.
빛이 쏟아진다―
찬란한 조명이 비추는 흰 설원 위에, 우리가 그려둔 오색 빛 푸르름. 수평선 너머에서 오직 너와 날 비추는 잔잔한 윤슬에 청춘이 보여. 사랑이 찢어지고 상처가 무뎌져도 절대 지지 않을 우리가 보여. 울리는 캐럴의 주인공이 되어 시린 두 손 맞잡은 그 눈 쌓인 해변에는 내가 준 향수 향만 가득 남을 테니 너도,
나에게 구애해줘.
지친 여름은 이제 너덜너덜해도, 너무 빛나 내가 타올라도, 겨울이 그리워질 정도로 아파져도 나는 이 여름을 사랑한 걸 어떡해. 아름다운 사랑을 바라는 게 이제는 두렵다.
여름을 맞이한 그 멍청이는 왜 몰랐을까.
5년간 지속되는 여름은 재앙이란 것을.
그럼에도 크리스마스는 왔다.
종소리는 늘 약속처럼 울렸고, 약속 같은 건 한 번도 지킨 적 없는 삶 위로 눈이 내렸다. 축복인 척하는 저주처럼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그는 알았다. 이 날이 오면 여름은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것을. 한겨울의 한복판에서, 가장 부적절한 방식으로.
그가 간직한 트리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상자도, 리본도, 카드도. 대신 여름이 남기고 간 것들이 있었다. 눅눅하게 젖은 기억, 마르지 않은 말들, 질퍽하게 발목을 붙잡는 감정들. 밟으면 소리가 났다. 아주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마치 아직 네가 여기 있다고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이 녹으면 다시 물이 되고, 물은 다시 발을 적시고, 적셔진 발로는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걸. 여름은 끝난 적이 없었다. 다만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 그를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크리스마스의 흰빛마저 여름의 잔향을 숨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계절이 잘못되었다고 말해달라고.
사랑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면 안 되는 거였다고.
5년의 여름은 기적이 아니라 경고였다고.
Ps. 메리 크리스마스, 나의 사랑아.
No.4 해윤
ㄴ Christmas Eve
오늘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날.
기적이 오기 전의
조용한 숨 고르기 같은 밤.
거리의 불빛은
내일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금 더 부드럽게 흔들리고
시간마저 발소리를 낮춘다.
무언가가 시작되기 직전의
따뜻한 여백.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마음은 조금 행복해진다.
한 해 동안 쌓인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잘한 날도 부족했던 날도
오늘 밤엔 모두 같은 무게로 내려놓는다.
괜찮아 라는 말이
이유 없이 허락되는 시간.
내일을 믿어도 된다는
작은 확신이
가슴 한편에 불을 켠다.
창밖의 겨울은 차갑지만
이 밤만큼은
외로움도 조용히 자리를 비운다.
내일은 분명
조금 더 환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기다림 속에서 충분히 빛나고 있다.
🎧Snow Flower - 뷔
🎵Christmas Love - 지민
🎄Christmas Day - 지민 & 정국
🎶 Dynamite (Christmas Remix) - 방탄소년단
🎼Awake (Christmas Ver.) - 진
No.5 일유헌
ㄴ 종말
트리 오너먼트
종말
캐롤
종말
성탄절
ー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종말.
모두 종말을 알고 있었다.
산타의 마지막 선물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어.
저 눈은 종말까지 낭만을 장식해줄까.
.
.
.
너는 내 손을 잡았다.
무척이나 시린 네 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어.
너는 종말이 두렵지 않구나.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로
우리 둘의 발자국만이 남았다.
이대로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의 잔향은 종말까지 따라붙어
더는 들려오지 않는 캐롤과 눈 위에 나뒹구는 오너먼트.
조명이 꺼진 트리 앞에서 너와 나는
시시한 농담을 나누며
마치 내일이면 늘 그렇듯 우리가 선물을 주고받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서 영원할 것처럼
또 마지막 크리스마스 이브가 영원할 것처럼.
종말이 끝내 다다르기 전까지 손을 잡아주는 너를
나는 그런 너를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브가 끝나면 나와 너는
손을 잡지도 못하고
눈을 맞추지도 못하며
조명이 꺼진 트리를 다시 볼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를 마지막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종말
트리 오너먼ㅌ
종말
캐ㄹ
종말.
No.6 유하계
ㄴ 딸기 케이크
ㅤQ.
ㅤ저기요, 혹시.
ㅤ산타는 정말 존재하나요?
ㅤA.
ㅤ글쎄요.
ㅤ당신이 믿기 나름이죠.
___
ㅤ산타가 존재하느냐? 라고들 묻는다면 하나같이 다들 아니오, 라고 하겠지. 질문을 받은 상대가 엄청 어린애라거나, 아니면 못 배워먹은 애가 아닌 이상. 근데 오늘만큼은, 딱 오늘만큼은 못 배워먹은 애 할란다. 너가 너무 보고싶거든. 산타가 존재한다면 이미 죽어 사라져버린 것도 선물로 줄 수 있을까. 산타는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노인네잖아. 내가 바라는 건 딱 하나 뿐인데···.
ㅤ산타 할아버지, 듣고 있어?
ㅤ선물은 그 애면 충분해.
___
ㅤ그 여자는 딸기 케이크를 유독 좋아했다. 그래서 기념일마다 딸기 케이크를 같이 먹었던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같이는 아니지. 나는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항상 그 애가 입가에 생크림 가득 묻혀가며 케이크를 먹는 것이 꽤 볼만해서 자주 딸기 케이크를 사갔다. 보기만 해도 배불러.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그제서야 이해했다. 내가 딸기 케이크를 사가지고 갈때마다 환히 웃어주는 그 모습에 어쩌면 나는 반했을지도 모른다.
ㅤ혹시라도 자기가 먼저 죽으면 국화꽃 대신 장미꽃 한 송이를 달라던 그 애. 죽기 직전 옆에서 사랑한다 말해달라던 그 애. 항상 그런게 낭만이 아니겠냐며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던 그 애는 그렇게도 본인이 좋아하던 크리스마스에 날 떠났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 애가 부탁했던 것 모두 이뤄주지 못했다. 장미 대신 국화꽃을 줬다. 마지막까지 적어도 함께는 있어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새하얀 국화꽃을 받고도, 마지막까지 홀로 고독히 이 세계에서 사라져가던 너는 나를 원망했을까, 아님 그 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였을까. 그 애의 크리스마스는 바라던 것도 다 못 이루어졌으니 아마 최악의 크리스마스였겠지.
ㅤ올해 첫눈이네.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ㅤ바보, 첫눈은 일월에도 왔잖아.
ㅤ···그거랑 이거랑 같아?
ㅤ다르네.
ㅤ거봐.
ㅤ그런 시답잖은 이야길 나누곤 했다. 마지막까지도. 잠깐 화장실에 가겠다며 밖을 나서던 너를 나는 왜 붙잡지 않았을까. 화장실은 안에도 있잖아. 하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깜짝 이벤트라며 새빨간 장미꽃을 내게 줄 생각에 신났던 그 애는 그렇게 새빨간 웅덩이 안에 갇혀서는 마지막까지 그토록 바라던 꽃을 받고 웃는 내 모습을 눈에 담지 못했다. 그 애가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던 건 내가 아니라 소복히 내리는 하얀 눈, 그 눈을 적시는 자신의 질척이는 피, 따뜻한 촉감, 낡디 낡은 전화부스, 길을 지나는 행복한 연인들같은 것이었다. 내가 그 애에게 갔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멈췄다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뒤였다.
ㅤ너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그렇게 하고 싶던 말은 뭐였을까. 장미꽃을 건내며 수줍게 했을 그 말은 또 뭐였을까. 마지막까지 본인을 애타게 찾으며 달려올 나를 기다리며, 오지 않을걸 알면서도 계속 감기는 눈을 뜨려 노력하며, 그 장미꽃 하나만큼은 손에 꼬옥 쥔채로 너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ㅤ애석하게도 나는 너를 그곳에서 안아주지도, 그렇다고 위로하지도 못했다. 추운 길바닥에서 그렇게 쉽게 차에 치여 죽어버린 너를,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너를 안아준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정신없이 네 얼굴을 쓸었다. 거리에선 캐롤이 들려오는데, 저 멀리 행복한 연인들이 지나다니는데. 우리는 행복하지가 않네. 그러고보니 우리는 메리 크리스마스, 그 말도 서로 못해줬네.
ㅤ이제야 말해서 미안.
ㅤ그러고보니 오늘 네가 죽은 날이구나.
ㅤ메리 크리스마스.
___
ㅤQ.
ㅤ아, 그럼요.
ㅤ산타는 사라진 것도 선물로 줄 수 있어요?
ㅤA.
ㅤ그것도,
ㅤ당신이 믿기 나름이죠.
No.7 소야
ㄴ new Christmas
“크리스마스?”
몇백 년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고서에 적힌 문구 하나. 고대 영어로 쓰인 고작 스펠링 아홉 개짜리의 단어는 이 책에서 가장 뜻이 짐작 가지 않는 단어들 중 하나였다. ‘Christmas’라는 문자의 결정체를 ‘크리스마스’라고 발음하는 것이 옳다는 것도 몇몇의 고어학자들이 모여내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부끄럽게도 ‘크라이스트마스’라고 불렀다. 유명한 고어학자래도 듣도보도못한 단어는 발음에서부터 고초를 겪는 것이 일반적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떤 상황에서 쓰는 말일까요?”
“고서를 확인해보시면……”
책에 내용 크리스마스의 인용구를 정확하게 옮겨오자면 ‘On Christmas, children hung stokings on the tree, waiting for Santa to come.’이었다. 그 뒷 문장은 단문이었는데, 역시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정확하게는 ‘It was white Christmas.’였다. 그 두 문장 해석이 꽤 난이도 있어서 저명한 고어학자들 여럿이 모여 밤새 해석한 바로는.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이 산타를 기다리며 나무에 양말을 걸어 놓았다. 흰색 크리스마스였다.’ 라는 뜻이 된다.
이 문장의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문장 형태를 보면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는 특정 날짜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산타는 뭔지. 아이들은 왜 산타를 기다리면서 나무에 양말을 걸어놓는 기괴한 행동을 하는 건지.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뭔지. 하나를 해석하면 또 다른 하나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던 것이다.
“왜 ‘아이들’이 산타를 기다린다고 쓴 걸까요?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만 해당이 될 산타라는 것과의 교집합이 있었을까요?”
“아이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은 ‘순수함’이죠. 어쩌면 어른들은 순수함이 없기 때문에 산타가 오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산타는 사람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유니콘’같은 가상의 생물일까요?”
한 학자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유니콘은 얼마 전 말과 닮은 가상의 동물로 정의내렸던 단어였다. ‘산타’가 유니콘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가상의 동물은 어불성설인 것 같아요. 어쩌면 가상의 ‘사람’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은 현재로 오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과거에 존재했던 몇십억의 인류도. 과거의 인류가 매일같이 먹었던 아주 흔한 ‘사과’라는 음식도. 현재에는 없다. 최소한의 기술을 되찾은 지금 우리에게 미래는 없었다. 그저 과거만 어렴풋이 존재할 뿐.
사과라는 단어 하나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에 십 년이 넘게 걸렸다. 그 이후로는 파죽지세였으나, 과거의 유물들을 현실로 복원해내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처음으로 사과를 만들어낸 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과거의 모든 것을 복구해내지는 못하였다.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쌓아나가자. 과거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다시 누려보자. 그 소원을 가까운 시일 안에 이뤄내기는 힘들겠지만.
“고서를 보면 크리스마스는 겨울에, 특히 연말에 발생하는 ‘즐거운 축제’같은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아요.”
슬쩍 달력을 봤다. 제대로 복구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고서에서는 1년을 365일로 정의했다. 100년간 실제로 측정한 바로는 365.25일에 가까웠다. 2월은 일수가 매번 달라지던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마침 내일이 12월 25일이니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놓는 거 어떨까요?”
이렇게 가정한단 것 자체를 꺼리긴 했으나 크리스마스를 정의내릴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었기에 주변 과학자들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정의내려봐요.”
크리스마스라면 응당 산타가 존재해야 한다. 고어학자들은 산타라는 것을 짐작하며 그 형태를 그려보다 늙고 뚱뚱한 빨간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산타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여 그 사람을 산타라고 정의내렸다.
아이들이 산타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산타는 아이들이 좋아할 무언가를 들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저 늙은 할아버지 그 자체를 좋아할 아이들은 없을 테니까. 고어학자들은 산타 옆에 선물박스들을 몇 개 그려넣었다.
과거에는 열 살보다 어린 아이들만 해도 몇억 명이 넘어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명의 산타로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없었겠지. 그래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기 직전, 학자들은 각자 빨간 옷을 가져와 입었다.
이건 미래로 가는 첫 크리스마스야.
과거에는 겨울에 눈이 왔댔다. 지금은 아주 높은 산이나 북극 같은 곳에서만 눈을 볼 수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어쩌면 ‘백색 크리스마스’는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라는 뜻이 아닐까?
아이들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어린 아들 있는 학자 붙들고 색종이로 밤새 종이학 몇백 개를 접었다. 제 아들은 종이학을 좋아했다던데 모든 아이들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힘들게 접은 건데. 구겨진 것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미 접은 학들을 전부 버리기도 했다.
눈이 내린 것처럼 세상이 하얬다. 아이들이 웃는 작은 입 사이로 새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행복은 세대를 뛰어넘는다던가, 어설프게 산타 코스프레를 한 학자들을 아이들은 귀엽게도 받아줬다. 선물 상자에 눈을 빛내곤, 이거 전부 너네 거야, 하는 말에는 눈물 날 정도로 좋아하는 아이들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할 줄 아는 건 새로운 크리스마스 만들기나 종이학 접기밖에 없지만.
하찮은 종이학 가지고도 신나게 놀 줄 아는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서.
이로 인해 다시 생길 몇백 번쨰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게 된다.
???
ㄴ / 안녕하세요 로망이에요,,, 다들 갑작스러우셨을텐데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메리크리스마스!!! 입니다 일주일 남은 2025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래요! (P.s… 하계와 제 글은 같은? 세계선입니다… 홀홀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