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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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9 20:49조회 143댓글 3음연
여름을 그토록 좋아하던 아이는
여름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새벽 이슬에 밀도가 묽은 듯
짙묽은 토마토의 탐스러운 빛깔
녹이 슬어 누렇게 밴 너덜한 우산과
짝이 맞지 않은 밑창이 덜렁거리는 삼선슬리퍼
전봇대는 햇빛을 받아 뜨겁게 일렁이는
여름이 왔습니다.

여름아 따신 바람은 왜 그렇게 나눠주고 다녀
행복을 치장한 아름다운 미소는 왜 그렇게 보여주는데
식도를 꺼리김 없이 통과하는 말들도 별 생각 없는 장난들도
여름아 너에게 난 그냥 우연이구나

여름아 너도 그냥 흔하디 흔한 짝사랑에 불과할 뿐이야
상처만 남긴 채 사라져버리는 영악한 짝사랑
여름은 청춘이라는데 나에게만 청춘이였으니 우리는 일방적인 청춘이구나
내 소원은 여름사다? 여름아 너에게서 영원을 약속할래 일방적인 약속
지켜지지 않는다면 여름사를 맞게 해줘 이 추악한 여름아

여름아 행복하지 마 평생 아니 조금이라도 아파
짙묽은 탐스러운 토마토는 가시만 남긴 채 초라하게 시들어줘
녹슬어 덜럼거리는 우산과 질질 끈 삼선 슬리퍼는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자
우연이였던 우리가 사라지는 것 처럼 처련한 척 애달픈 척 나 혼잔데
전봇대가 부러졌으면 그리고 큰 해일이 찾아왔으면
나에게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쓰나미가 너에게도 찾아왔으면 일렁임이여도 좋으니
푹푹 찌는 여름날 이제 찾아오려나

여름에게 버림받은 나에게 여름이 찾아올까요?
사랑이 구원이냐 물으신다면 너는 내 구원이였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여름아, 여름아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그 여름아
.
올해도 여름사는 아닌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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