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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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3 16:40조회 74댓글 75eo1z
에어포켓 속에서 숨쉬는

이 끔찍한 기분.

지구는 푸르른 대기 아래

침몰한 난파선,

에어포켓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많아봐야 40초를 넘길까 말까다.

가쁜 숨을 내쉬며 다시,

에어포켓에 들어오면,

이곳마저 수명을 다해감을 느낀다.



잠이 유독 안오는 날이다.

오랜 뒤척임에 예민해진 눈에게

달빛은 너무 강해서

마치 달이 녹아 내려오는 듯 했다.

창문 너머의 그림자들은

그 달빛을 마시려는 듯 일렁이고,

나는 잠을 포기한 채

허물벗듯 일어난다.



달빛의 은가루로 녹아내린 밤,

백합의 말린 혀는 자줏빛 침묵을 지키고

몽유병자는 기억을 걷는다.

우리 모두 그를 따라가도록 하자.

몽유병자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의 발이 닿는 곳이 곧 길이니까.

고독하고도 황홀한 길.



구름이 잔물결처럼 떠있고,

난 호수 대신 밤하늘에 뛰어들었다.

오랜 방황에 미쳐버린 바람은

귓가에 고인 채 어설픈 휘파람을 불고,

나는 두 손으로 목을 옥죈 채

별을 토해냈다.



해가 뜨기 직전,

하늘의 암흑 속에서

커다랗고 창백한 손이 나타나

나를 실로 묶어뒀다.

허리춤을 감은 실은

해를 삼킨 대기와 뒤섞여 꼬매지고

그제서야 나는 깨닫는다.

새벽에 보이는 별들은 깊은 밤,

난파선을 떠나 도망친 존재들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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