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e D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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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3 18:51조회 81댓글 7ne0n
유리 위를 맨발로 걷는 기분이었다.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면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려움보다, 그 위태로움의 아름다움이 날 자극했다. 발바닥이 베이는 감각이, 너에게 닿을 때마다 피가 달콤하게 번졌다.

밤공기에는 달빛과 피 냄새가 섞여 있었고, 희미한 거베라 꽃 향기가 흩날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너의 머리칼이 내 얼굴을 스쳤다. 그 순간마다 세상이 흔들렸고, 마치 우리 둘만 남은 것 같았다.

“세상이 우리 둘뿐이라면 좋겠어.”

그건 그저 잠깐의 꿈 속에서 뱉은 비현실적인 말이었는데, 그 꿈을 너무 진심으로 믿어버렸다.

너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슬픔이 있었고, 그 슬픔 속에는 또 어떤 결심이 있었다. 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아차리고도 모른 척했을지도 몰랐다.

너의 손끝이 내 손을 스쳤을 때, 세상이 잠깐 멈췄다. 달빛이 굳고, 공기가 고요해지고, 심장이 고장난 듯 불규칙하게 뛰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사랑보다 훨씬 뜨겁고, 훨씬 짧고, 훨씬 치명적인 무언가였다.

나는 네게 다가가며 생각했다. 이 감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폭발하듯 끝나버릴 것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곧 사라질 무언가라 해도 지금만큼은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

너는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잊지 마. 나는 여전히 네 옆에 있어.”
그 말은 너무 조용해서, 마치 꿈속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린 서로의 이름을 잃었다. 이름도, 어제도, 내일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서로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이 자리만이 전부였다.

붉은 빛이 우리를 감싸고, 어디선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바람은 뜨거웠고, 숨을 쉴 때마다 목이 타들어갔다. 너는 내게 입을 맞추며 웃었다.

“괜찮아. 우리 이름이 뭐든 상관없잖아.”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세상은 마치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잠시 고요했다. 그리고, 곧 터졌다.

빛이 폭발했고, 공기 속에 흩어진 잔향이 내 몸을 스쳤다. 그 안에서 나는 너를 봤다. 네 얼굴도, 내 얼굴도 아니었다. 불꽃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 개의 그림자뿐이었다.

그건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착각이었을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아.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남든, 세상이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Jane Doe.

그게 우리였다. 누구의 이름도 아닌,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사랑.


요네즈 켄시, 우타다 히카루- JANE DOE
https://youtu.be/nweSVN6DSYo?s…

@ne0n. 원작에서는 서로 만나지 못 하고 끝났지만 여기서라도 둘이 꼭 마지막에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https://curious.quizby.me/ne0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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