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무색: 얼굴색을 하나도 안바꾸고 자기자신을 상처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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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네가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서 멀어지는 쪽이 옳겠지. 그래서, 너에게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우리가 만약에, 다른 세계에서 다시 만난대도. 40세기의 여름에 만난다해도.”
말을 이으려는데 솔이 내 손을 붙잡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빛나는 솔의 눈이 그렇게 아름다워보일 수가 없었다. 곧이어 솔은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내 손을 꼭 잡고는 우는 꼴이 정말 아기같아서, 순간 확 안아버릴 뻔했다. 작은 솔을 품에 안고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싶었다.
“달라지는 건 없을거야.”
그리고 나는 그렇게 솔의 가슴에 비수를 박았다. 비수가 박힌 솔의 심장은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고, 솔은 그 심장 조각조각들을 붙잡고 앞으로를 살아나가겠지. 그저 그 미래에는 내가 없기를 바랄 뿐이였다. 솔이 그만 울기를 바랬으나 솔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나는 솔을 울렸고, 이제 솔을 사랑할 자격 따위 없다.
“솔아, 솔아… 미안해…”
울다 지쳐 잠들기라도 한건지, 내 손을 잡고는 엎드려 누워있는 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솔의 부은 눈이 안타까워 눈도 살짝 만져보았다. 살아있는 솔의 촉감을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기억하고자 발버둥치는 것 같아 웃겼다. …마지막으로 솔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나는 집을 나갔다. 잠든 솔이 깨기라도 할까 살금살금 기어나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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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없는 폐허. 멀리서 보면 숲이라고 생각할만큼 높이 자란 나무들. 몇 년전보다도 커진 것 같다. 이 정도면 아무도 내가 죽었는지 모르겠지.
솔과 헤어진지는 약 6개월이 지났다. 반년동안 나는 솔 생각을 안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 한 달을 같은 곳에서 있을 수 없었다. 그 인간과 그의 주변인들이 늘 나를 죽일 듯이 쫓아다녔다. 처음 왔던 곳인 이 곳은 이전보다 황폐해졌다. 과연 죽기에 적합한 장소다.
내 삶이 그들 손에 마무리 되기는 싫었다. 고로 나 스스로 마무리짓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내 삶은 언제나 고달팠다. 가난한 집에서 사람 대접을 못 받았고, 이후 성인이 되기도 전에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솔을 만났다. 솔과는 그 이후로 쭉 함께했다. 그런 솔을 내 망할 눈 하나 때문에 반년 전 매정하게 버렸다. 죽어 마땅했다. …그래도, 솔을 만나 조금은 행복했다. 살만한 인생이라고 느낀 적도 꽤 있었다.
그런만큼 내 마지막 세상은 솔이여야 했다. 작동도 안되는 고물 자판기도, 낡다못해 곧 쓰러질 것 같은 이 폐가도, 높이 자라 하늘을 가리는 썩은 나무들도 아닌, 솔이여야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이 솔이길 그렇게 바랬다. 그러나 내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난 고물 자판기가 보이는 낡은 폐가에서, 하늘 한 번 보지 못하고, 솔도 보지 못한 채 목을 매달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풍경과, 내 마지막 기억은 그렇게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해도 될까?
솔아, 너와 헤어졌을 때부터 내 삶은 이미 끝난거였어. 그러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너라고 치부해도 괜찮지 않을까? 41세기의 여름에서 널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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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랑 해 성별은 저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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