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상자 #1 [ 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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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6 11:53조회 44댓글 7망기manggi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나의 존재조차도 사그라트려 버릴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곳에서

덧없이 눈을 맞고픈
그냥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를 한없이 가엾게 여기는 것들과
어쩌다보니 잠시 온기를 쬐어준 순간의 볕이
그러한 기분을 선물이랍시고 건넨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웃으며 화답한다
'고맙다'라는 가장 내게 어울리지 않는 말을
천천히 입에서 굴려 내뱉는다

사라지고 싶지 않았기에 사라지고 싶다
다 부숴버리고 싶었기에 부서짐을 택했다
더는 이런 말장난에 진부함을 담고 싶지 않다

더는 한 글자, 한 숨, 한 번의 눈 깜빡임에
온 힘을 다해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내가 그저 우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마냥 한심해서
그냥 그랬다고 치부할 수 있는 몸의 떨림이 아님에도
그냥 그랬다고 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서,

그냥 이 모든 상황이 지겨울 만큼 시려서
그냥 그래서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진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녹아버린 마음이 볼을 타고 흐르면
내 마음은 이리 따스했나 위안이라도 삼을 텐데

선물이랍시고 받았던 기분이 이끈
텅 빈 눈보라는
눈시울이 붉어지기가 무섭게
흐르는 마음을 차갑게 식혀버린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란다
그저 그렇게 죽어가란다
그저 그렇게 끝마치련다
그저 그렇게 24시간을 또 채워낸다

언젠가 모든 시간이 비워질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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