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5 14:10•조회 54•댓글 4•하루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날, 나는 울었고
엄마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촛불을 켜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 불을 스스로 켠 적이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생일은 축복이야. 너의 존재를 기리는 날이잖아.”
하지만 내 존재는
엄마의 죽음 위에 세워졌다.
내가 살아난 만큼,
엄마는 사라졌다.
나는 생을 선물처럼 받았고,
엄마는 그 대가를 치렀다.
나는 생일을 축하할 자격이 없다.
나는 생일을 견디는 사람이다.
열두 번째 생일.
병원 응급실의 냉기가 손끝에 스며들던 아침.
엄마는 나를 향해 마지막으로 웃었다.
“너무 좋아하지 마, 다 쏟아지면 사라지니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기쁨은 유리잔 같아서
꽉 채우면, 쉽게 깨진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떤 잔도
가득 채우지 않았다.
사랑도, 기쁨도, 미래도.
나는 매년 그날,
엄마가 묻힌 언덕에 간다.
가장 조용한 시간, 새벽 다섯 시에 도착한다.
바람도 조심스레 움직이는 그 시간.
작은 케이크,
그리고 검은 초 하나를 꺼낸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검은 초야?”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검은 초는 죽음의 색이지만,
나에겐 가장 정직한 생일의 색이다.
나는 엄마에게 묻고 싶다.
내가 태어난 날이 그렇게도 무거운 날이어야 했냐고.
왜, 내 첫 울음과
엄마의 마지막 숨이 겹쳐야 했냐고.
스물여섯 번째 생일,
나는 처음으로 꿈에서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정원을 돌보며 말했다.
“넌 슬픔으로 나를 기억하지만,
나는 너의 빛으로 살아 있어.”
나는 잠에서 깨어 울었다.
그 말이 거짓이기를 바랐다.
내가 밝아질수록,
엄마는 더 멀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억을 ‘보존’한다고 말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소멸’의 다른 이름이다.
엄마의 목소리도, 체온도,
이제는 내가 만들어낸 환영이 되었다.
올해 나는 처음으로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작은 검은 초 하나.
그리고 말했다.
“엄마, 나 여전히 무너져 있어.”
“하지만 오늘,
그 무너진 자리 위에 꽃 하나 피워볼게.”
촛불은 바람 없이 꺼졌다.
나는 그 순간,
엄마가 다녀갔다고 믿었다.
내 생일은
엄마가 하늘나라에 간 날이다.
그러나 이제,
그 날은 엄마가 내 안에 다시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