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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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2 18:14조회 33댓글 0Chaei
산기슭 오래된 소나무 숲 옆, 거의 잊혀진 한 정원이 있었다. 나무문은 오래되어 페인트가 벗겨지고, 문 앞엔 잡초가 무성했다. 아무도 이 정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누가 떠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노인 유택은 매일 아침 정원에 나와 쓸고 또 쓸었다. 사람들은 그가 무슨 이유로 이런 허름한 곳을 지키는지 묻곤 했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고개 숙인 채 낡은 빗자루를 움직였다. 쓸고 있는 것은 낙엽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정원은 이미 사람이 없는데, 왜 아직도 지키고 있느냐?”
 한 행인이 물었다.

유택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빗자루를 움직였다. 바람이 멈추고 낙엽이 모두 쓸릴 때까지.

-

정원 한가운데 몇 그루의 늙은 소나무가 서 있었다. 굵고 거친 나무줄기는 마치 유택의 늙은 혈관처럼 굳어 있었고, 나뭇가지 사이엔 바람에 울리는 풍경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면 희미한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그 소리를 듣는 이는 유택뿐이었다.

소나무 아래엔 오래전 그가 직접 심었던 잔디밭이 있었다. 이제 잔디는 자라지 않고, 땅은 갈라져 마치 노인의 손바닥처럼 주름져 있었다.

정원의 서쪽 구석에는 오래 말라버린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옆에는 희미하게 ‘고려장(高麗葬)’이라 새겨진 돌비석이 놓여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그 단어의 뜻을 몰랐다. 다만 노인들만 기억했다.
나이가 많고 몸이 쇠약한 사람이 스스로 삶이 다해간다고 느끼면, 가족들이 그를 산 깊은 곳에 데려다 놓고 떠나는 일이었다.

미움이나 배척이 아니라, 체면을 차린 이별이었다.
유택도 언젠가 어머니를 업고 그 산을 올랐다. 그해 눈이 많이 내렸다. 어머니는 그의 등에 업혀 속삭였다.


“뒤돌아보지 말아라.”


천천히 한 걸음씩 눈 쌓인 길을 걸었다. 그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
어머니가 떠난 뒤, 유택은 다시 정원으로 돌아왔다. 기억 속 무덤을 지키며 마치 더 이상 꽃피지 않는 늙은 나무처럼 조용히 바람과 햇빛에 몸을 맡겼다.

“사람은 살아서, 가식이라도 한 통의 편지를 받지 못하면 너무 고단한 법이지.”


그는 가끔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른 입술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어느 겨울날, 그
는 살아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만약 네가 아직 여기 있다면, 내 얼굴을 비춰주오. 말하지 않아도 좋으니, 내게 네가 나를 보았다는 걸 기억하게 해주오.”

편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발송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편지를 베개 밑에 넣고 매일 밤 그 편지 봉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확인했다.


‘적어도 한마디는 내가 누군가에게 했다는 걸.’

이것이 이 정원의 하루였다.
낙엽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기다림.

다음 눈이 내릴 때, 유택은 또 다시 산으로 오를까?

아니면 이번엔 누군가가 그를 업고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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