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바 같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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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8 14:55조회 18댓글 2EIEI 🫶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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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박바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느껴지는 그런 여름.

그리고 그 여름에, 너를 만났다.

“너, 왜 자꾸 매점 앞에서 기웃거려?”

그날도 난 수박바를 사러 매점 앞을 서성이던 참이었다. 뜨거운 햇볕에 머리가 익을 것 같은 날, 매점 아주머니는 늘 쉬는 시간이 끝나야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항상 같은 시간에, 너도 거기 있었다.

나는 네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너는 내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처음 말을 붙인 건 사실 나였다.
너는 교복 셔츠 위에 야구 유니폼을 걸치고 있었고, 나는 농구공을 들고 있었지.
누가 봐도 다른 세계 사람이었는데, 우린 동시에 같은 걸 집었다.

“어? 수박바 좋아해?”
“아니, 넌?”
“나도 사실 그닥.”
“그럼 왜 집었어?”
“…그냥, 네가 집길래.”

이상했다. 분명히 아이스크림 하나 샀을 뿐인데,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심장이 경기 끝난 농구공처럼 쿵쿵거렸다.

그날 이후, 우리는 수박바를 핑계 삼아 매일 매점 앞에서 만났다.
별로 맛도 없는 그 아이스크림을, 입 안 가득 도파민처럼 물고 웃었다.
네가 웃으면 나도 웃었고, 네가 화장실 간 사이에도 네가 생각났다.

너는 항상 말끝을 흐리며 웃었고, 나는 그런 너의 목소리에 중독돼갔다.
방학이 시작되고도 우린 매일 만났다.
근데, 그날은 달랐다.

“우리, 개학하면... 안 볼 수도 있겠다.”
“왜?”
“나는 3학년 되고 야구부 더 바빠지고, 너는 농구부 주장이잖아.”
“그래서?”
“그냥. 지금처럼 매일은 못 보겠지.”
“그럼,” 내가 널 똑바로 쳐다봤다.
“지금 고백하면, 매일 볼 이유가 생길까?”

너는 당황해서 수박바 스틱을 입에 물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얼굴만 빨개졌다.
수박바보다 더 수박 같았다.

그 여름이 지나고, 우리는 바빴다.
하지만 난 여전히 네가 제일 좋았고, 너도 그러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냉장고엔 늘 수박바가 가득하다.
입 안에 넣는 순간, 그때처럼 도파민이 확 도는 느낌.

— 첫사랑이, 결국 마지막 사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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