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9 21:34•조회 28•댓글 2•유하을
아침 햇살이 오래된 커튼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올 때, 방 안의 공기엔 먼지가 떠 있었다. 그녀는 그 먼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아무 데로도 향하지 않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빛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사람의 기억이란, 어쩌면 저런 게 아닐까.
책상 위에는 낡은 탁상시계가 멎어 있었다. 멈춘 시각은 오전 9시 17분. 그때부터 이 방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시각이었다.
그녀는 매일 그 시계의 초침을 다시 밀어보려 했지만, 손끝이 닿을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떨렸다. 초침이 움직이는 순간, 무언가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 그래서 그녀는 늘 그 자리에서 멈췄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녀는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공기가 달라졌다. 어릴 적의 냄새 — 햇볕, 풀잎, 먼지, 그리고 지나간 시간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탁상시계를 다시 본다.
그녀는 조용히 초침을 밀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9시 17분이 지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방 안의 먼지들이 일제히 일어나는 듯했다. 그 빛 속에서, 그는 앉아 있었다. 오래전의 웃음을 지닌 채, 커피를 들고 있었다.
“그토록 시간이 멈췄으면 했잖아.”
그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국,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네요.”
그는 미소 지었다. “기다릴 이유가 없으니까.”
그녀는 그 말을 이해했다.
그는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공기를 잡았다.
“이제 괜찮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 순간, 초침은 다시 멈췄다.
방 안의 공기가 잦아들었다.
빛 속의 먼지들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시계를 뒤로 밀어 넣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깥의 시간은 여전히 흘렀다.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녀의 손끝에서 떨어진 먼지가 햇살 속에서 춤을 췄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아무 일도 없던 듯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