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정리를 하다 보면 늘 잊었던 기억과 맞닥뜨리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책장 아래 깊숙이 처박혀 있던 낡은 종이상자 하나. 테이프는 반쯤 뜯겨 있었고, 모서리는 닳아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뚜껑을 열었는데, 낯설지만 익숙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는 내 하루를 모두 기록하던 분홍색 자물쇠가 달린 작은 다이어리.
나는 한참을 그 다이어리를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레 펼쳤다. 자물쇠는 이미 제 구실을 하지 못했고, 종이에서는 오래된 먼지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 나왔다. 첫 장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커서 우주비행사를 해서 햇님 위로 날아 다닐꺼야!"
옆에는 색연필로 그린 로켓과 별이 있었다. 색연필은 연필 선을 삐죽삐죽 튀어나가 형편없이 서툴렀지만 그만큼 진심이었을 그림이었다. 나는 웃음이 나면서도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린 시절의 꿈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피아니스트 되기", "부모님 집 사드리기", "전 세계 여행하기", "만화책 작가 되기." 다이어리 속의 나는 마치 뭐든 할 수 있다는 듯 씩씩했다.
그 무모한 자신감이 너무 낯설어, 나는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떨궜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우주비행사는 커녕 내 궤도를 벗어나 허공을 떠돌고 있다. 현실은 언제나 꿈보다 빠르게 무너졌고, 나는 점점 작아졌다.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어린 시절의 다짐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비웃는 것 같아 마음이 저릿했다. 그 무수한 약속 중 나는 몇 개나 지켜냈을까.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마지막 장으로 넘겼다. 글씨체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그 문장은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어른이 되서 네 꿈들을 못 이뤘도 괜찬아. 나는 언재나 행복을 찾아 나갈 꺼니깐! 절때 자절하지 안을 거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어린 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괜찮아." 그렇게 단순한 말이었는데, 왜 이제는 이 말 하나가 그렇게 소중할까. 눈가가 시큰해졌다. 펑펑 울어버리고 싶을 만큼, 그 한 줄이 내 마음을 세게 두드렸다.
나는 펜을 들어, 마지막 페이지 아래 빈 줄에 조심스레 글씨를 남겼다.
"고마워. 덕분에 다시 내 꿈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여전히 행복을 찾아 가고 있어. 그 꿈을 이루는 게 언제일지는 나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그 좁은 방 안에 잔잔히 울렸다. 글씨를 다 쓰고 나서 한참 동안, 다이어리를 덮지도 못한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었고, 나는 다시 그 아이에게 답장을 써 주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린 내가 남긴 희망의 씨앗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었고, 나는 그것을 잊고 지냈을 뿐이었다.
나는 다이어리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이 페이지를 펼쳐 보게 된다면, 또 다른 나의 답장이, 나를 힘껏 일으켜 세워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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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에 막 쓴 거라 살짝 이상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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