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첫사랑이 나기를 바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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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9 00:49조회 126댓글 1812 55120 88121
네 첫사랑이 나기를 바랬는데

너는 아무렇지 않게 첫사랑 이야기를 꺼냈지.
마치 오래전에 정리된 물건처럼.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혹시 그 상자 안에 내가 들어 있지 않을까 계속 확인했어.

너와 처음 눈이 마주쳤던 날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 나.
그날 이후로 나는
모든 처음을 너에게 맞춰 뒀어.
너는 이미 다른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었지만.

너의 말은 부드러웠고
추억은 정확했겠지.
나는 네 기억 속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질투는 하지 않으려 했다.
질투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대신 마음이 조금씩 무너졌다.
그래도 티 나지 않게.

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는 참 어렸다고.
그 말이 이상하게 나를 더 늙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도 그 시절에 서 있었으니까.

너의 첫사랑은 지나갔고,
나는 아직 시작도 못 했다는 사실이
가장 숨을 막히게 했어.
사랑은 끝난 사람보다
시작하지 못한 사람이 더 오래 붙잡고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걸까.

나는 아직도 네가 말하는 모든 말 마다
내 이름이 튀어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이미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는 이미 다른 계절로 가 있었고,
나는 같은 자리에 남아
네가 처음이었으면 좋았을 시간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나는 멍청하게도..

네 첫사랑이 나기를 바라고 있다.

___
옛날에 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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