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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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4 11:27조회 52댓글 0파락
투명함을 침대 머리맡에 두곤 잊은 지 오래입니다.
용도 미상이 되어버렸어요. 이대로 괜찮은가요?

녹아내린 열쇠,
끊어진 머리끈,
색 없는 물감.
그 바보 같은 이들과 친구가 되었어요, 저는.

따가운 햇살과 날카로운 비바람을 막는 법을 알면서도
잔뜩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더러운 공기를 환기하는 법은 몰라요.
귀를 기울여도 들리는 것은 허공을 가르는 가위질 소리.

남들 따라 삶의 모든 지혜를 담았다던 그 책을 읽었어요.
빨간색의 형광펜을 몇 번이고 그었어요. 그런데도.
제 머릿속엔 여전히 옅은 숨이 메아리치는 심해만이 일렁거려요.

책갈피를 꽂아 알려주어도 글 곱씹다 끝내 구역질하고 마는 저예요.

가여운 허수아비에게 뇌를 주세요.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에 심장을 주세요.
헛된 공포에 사로잡힌 제게 용기를 주세요.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작품명 패러독스.
제 눈에는 망가져 더는 쓸 수 없는 것 외로 보이지 않는걸요.
그 모습이 나를 닮아 짜증이 날 뿐인데.

세계와 당착을 겹쳐보는 빗나간 초점을 옳게 이끌어,
더는 홀로 미완성의 말을 삼키지 않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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