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비 오네, 진짜.”
괜히 한숨을 툭툭 내뱉었다. 오늘은 분위기 좋다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고, 주변 상가를 좀 둘러보다가 이제 막 집에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버스를 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우수수 내렸다. 거기다가 괜히 감성에 젖어들기 딱 좋은 자리에 앉아버려서 그런건지, 그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너는… 이 자리 되게 좋아했던 것 같은데.”
18살 무렵, 모두들 청춘이라 부르던 어느 시기에 안착해있던 나는 공부조차 하지 않으며 놀기 좋아하는 흔한 학생이었다.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나기도 하고, 지각도 했었지만 그 외에 일들은 지금 와선 잘 기억나지 않는 것 같다.
그 날은 수행평가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었다. 오늘 안까지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어차피 백지로 내게 될 수행평가를 제출하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지 않았다.
“야, 너! 수행평가 제출 안해?”
우리 반의 반장, 한예주. 엎드려 잠을 청하던 내게 다가와 날 툭툭 치더니 말했다. 한예주는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날 보며 기가 찬 듯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지금 애들 건 다 모았어, 너만 내면 돼. 백지여도 괜찮으니까 줘.”
나는 그 말에 몸을 일으키곤 서랍 속을 뒤져 나온 깨끗한 수행평가지를 건넸다. 한예주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다음에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던가, 알려줄게.”
나는 한예주의 다가온 호의에 그저 반장이라 날 도와주려는 건가 싶어 우선 고개를 두어 번 정도 끄덕거렸다. 한예주는 돌아갔고, 교실에는 나만 남아버렸다.
버스는 계속해서 달리고 달려 시내를 지나고 있었다. 비가 쏟아져 내려 햇빛을 덮은 먹구름이 그늘을 내리는데도, 느껴지는 내 마음은 선명하게만 여겨졌다.
그때, 백지로 수행평가지를 내던 날 보던 네 생각은 온통 나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로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도 내신까지 챙기지 않는 동급생을 보면 답답하게만 여겼을 것 같은데, 날 챙겨주려 하였던 네 마음을 이제 와서도 한번씩 헷갈리곤 한다.
내 마음 속에 드리운 호기심에 떠오르는 추억들은 잠시 덮어두었지만, 그 청춘이라 불리는 시절 속에서 네가 내게 말했던 달콤한 사랑은, 그저 서로의 불안정한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려던 발걸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사랑은 안정적인 기차를 타면서도 잘못된 노선을 타는 것만 같았다. 직선으로 달리던 노선에서는 서로만이 완벽한 조합이었다 느끼면서도 노선이 틀어지기만 하면 갈라서려 하였다. 우리의 사랑은 영원할 것 같다 말하면서도 불안정하기만 했다.
지금의 너는 어떨까. 내게 말하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속삭이고 있을까? 아니면 혼자서 그 추억들을 묻어가는 길에 서 있을까. 네게 연락을 해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더 이상은 서로에게 추억으로만 남자고 하였던 다짐을 져버릴 수가 없어 몇번이고 마음속으로만 괴로워하고 그리워하였다.
그때의 넌 불안정하지만 완벽했고, 나는 완벽을 흉내냈지만 불안정했으니 서로의 불안정함들을 채워주려 노력했었던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하려 했지만 결코 다다를 수 없던 사이, 우리는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 시절의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네가 다가와주어 열렸던 벚꽃잎이 내리는 청춘은 거짓이 아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였다는 사실이 깊게 박힌 것도 아니니까.
어린 시절의 미숙함이 가득했던 나라서, 오히려 널 채워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서랍 속에 넣어둔 추억들이 내 마음 안에서는 자라나기 충분한 명분이었고.
그래도 이제는 서랍 속에 넣어 언젠가 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그날에 열어보려 한다. 더 이상 열리고 닫히는 서랍이 아닌, 온전한 내가 되어 나라는 열쇠에 열릴 수 있는 그 추억들로.
그 시절의 우리는 불안정하지만, 완벽한 사랑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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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우리의 마지막은 서로의 안녕으로 작품 연재와 함께 단편소설도 써보려 해요.
앞으로 여러 글들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은 관심,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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