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견[必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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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8 19:03조회 60댓글 2필견
https://curious.quizby.me/zeoz…

내가 나라는 존재를 인식했을 무렵, 그대는 사막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냥 서성이는 게 아닌 무언가를 계속 찾기 위해 허둥댔다. 그게 무엇인지는 그대만이 알겠지만, 이 모래와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 굽이진 그늘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찾는 거라면, 그건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애인 혹은 파트너도, 가족도, 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그대가 원하는 건 분명 이곳 어딘가에 있으리라. 그러니 계속 찾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걸 찾을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는 오롯이 그대의 몫이다.

찾기로 정하고 걷기 시작했다면, 남은 건 그대 머릿속에 있는 상상이란 상상은 죄다 끄집어내야 한다. 설령 그 망상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경험했던 바라면, 모르는 영역에 다다랐을 때 상상력이 부족한 자부터 쓰러진다는 알 것이다. 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기억이 차츰 꼬일 수도 있다. 얽힌 기억은 의지를 무너뜨리니까. 어쩌다 이따금 신기루가 그대를 향해 손짓할 테지만, 그걸 향해 다가갈수록 타는 발 바닥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이 바닥에선 실랑이는 모래바람조차 따갑다. 고통에 영혼이 몸부림친다. 육체는 이대로 쓰러지길 바라지만, 그 열기는 그대의 능력으론 감당하지 못한다.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이 식도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끓어오른다. 발버둥친다. 몇 번이고 한계에 부딪힌다. 세상의 모든 염원을 쥐어짜도 원하는 건 나오지 않는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게 버틴다. 그리고 기절과 긴 암전... 멈춰만 있는 자에게 시간의 구원은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그대에게서 비롯됐다. 처음 이곳에 발돋움했을 땐 잘 몰랐지만, 그대의 간절함에서 어떤 놀람을 느꼈다. 나의 속삭임에 그대가 깨어났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스쳐 지나가 악몽 속을 다시 걸었다. 충분한 잠을 자던 건 대체 언제일까? 꿈을 품고 계속 걷는다. 짊어지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전부 둥지에 버려뒀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다. 근거는 없다. 그건 경험된 지식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감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사막이 비로 적셔지길 바란다는 건 말도 안 됐다.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멈출 수 없다.

그리고 며칠 후, 그대의 눈앞에 작은 오아시스가 보였다. 신기루가 아니란 걸 알게 됐을 때, 그대는 비로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여기서 그대는 선택해야만 한다. 계속 이 자리에 머무를 것인가? 원래 목적지를 향해갈 것인가? 무엇이 되었든 존중한다. 어쨌든 그대는 작은 고비를 한개 넘겼으니까 이 경험은 충분한 지식이 된다.

애매한 자들의 지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며칠인가? 아니면 몇 주? 꽤 시간이 흘렸다. 비는 내리지 않았고 사막의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모래가 없는 영역은 심하게 갈라졌다. 이런 것들을 보면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는 오아시스를 떠나온 걸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는 잠시뿐,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다음 목적지를 찾아야 한다.혹시나, 혹시나 어쩌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기회가 다시 오길 간절히 바란다.
지속해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의 연속. 물론 여기서 포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이라면 지급해야 할 대가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하지만 그게 두려운 거다. 인정하고 나면, 후에 포기해 버려야 될 게 너무 많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리고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더는 자기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간다. 더 나아가서 이성을 잃는다. 왜 이렇게 태어났는가 원망도 해본다. 애초에 목표는 자기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착각한다. 그래서 쉽게 발을 뗄 수 없다. 결국 오기로 버틴다. 오직 홀로 남아서, 이루고자 했던 바를 다시 한번 곱씹는다. 이때부턴 마치 경주마처럼 주변이 안 보인다.

지성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대는 퍽 아이 같고 그래서 애처롭다. 돕고 싶어도 내가 그대의 영역에 손을 대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는 나를 볼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나는 그대의 간절함에서 태어났지만, 단지 길을 무사히 갈 수 있게 기도하고 지켜볼 뿐이다.

생각을 마친 그대는 다시 걷는다. 이제 정말로 남아있는 게 없다. 그리고 얼마의, 아니 며칠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더니, TV 노이즈만큼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쌓여 넘실거리다 범람했다. 바람이 소용돌이친다. 천둥 치는 소리가 났고, 여기저기에 벼락이 떨어졌다. 긴 물줄기가 이어지더니 이내 강이 되고, 오아시스가 만들어졌다. 비가 숨죽이고 있던 씨앗에 숨을 불어넣어 오아시스 주변에 꽃이 만개했다. 고비를 넘은 우연의 산물, 기적이 태어났다.

한바탕 비가 몰아친 후, 어제와는 다른 밤이 찾아왔다. 그날따라, 깊은밤 어둠 속 쏟아진 낙루의 씨앗들이 휠씬 가득했다. 그 가는 물줄기로 이어진 성좌는 이 땅 위에 또 다른 빛을 내리고 있다. 그저 무심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이 죽은 자들의 영토에 선 별의 눈물만이 그대의 길을 인도한다. 그러면 축복이란 생각까진 아니어도, 버틸 힘을 얻는다.

자연의 시선이 사라진 땅은 급속도로 차가워진다. 땅에서 솟아난 얼어붙은 송곳이 온몸을 찌르자, 꽃밭 사이에서 그림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쪽을 바라보면 밝은 빛 뒤로 키가 큰 그림자들의 환상적인 춤이 보인다. 죽음을 떨쳐내는 일종의 의식인 셈이다. 그대는 어딘가 자기를 닮은 그들을 적선하듯 돕는다. 따뜻한 동정에 시린 몸이 녹는다. 그림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갇힌 세계에서 빠져나올 순 없다. 그러기에 더욱 광기 서린 춤을 춘다. 견자가 되지 못해 부러진 금수의 이빨은 기어 다니는 인간의 간사한 혓바닥만큼 애처롭기 짝이 없다.

하지만 너는 그들을 보며 웃다가 울었다. 저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걸까? 아님, 자기의 부족한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걸까? 방관자인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음 날, 그대는 나 홀로 두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제 그 실패자들과 함께 떠난 걸까? 계속 그대를 지켜볼 의무가 있던 나는 놀라서 그대의 흔적을 찾아 하늘 위로 날아갔다. 하지만 발자국 하나 남겨지지 않았다. 나는 더 높게 람에 부딪혀 긴 추락을 했다. 꽃들이 흩날리며 멀리 날아갔다. 아기 천사들이 부르는 승리의 합창이 울려 퍼진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대의 투쟁은 어젯밤으로 끝이 나버렸다는 걸. 방황은 끝났다. 그럼 날 묶어뒷던 이 사막의 고난과도 영원히 안녕이다. 꿈에 작별 인사를 해야지.

그래야 했을 테지만, 나는 눈을 떴다. 눈앞에 여전히 사막이 보인다. 하지만 더는 그대가 남아 있질 않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닌가? 어리둥절했다. 순간 피부가 뜨겁게 타더니 날개가 바스러졌다.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곤 빠르게 오아시스에 몸을 담갔다.
순간 깨달았다. 그대가 날 바쳐 열쇠를 손에 봉고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목표에서 벗어난 것을... 그대는 날 바라지 않았다. 아니 바랐어도 지쳐버린 것이다. 예전엔 이런 도피는 미처 생각도 못 했던 그대였으니까. 그 선택을 이해했다. 그대 역시 평범하고도 평범한 존재.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으레 사람은 봄을 찾아 도망갈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어떤 계획이 있던 걸까? 아님, 단순한 충동일까? 걱정됐다.

뭐가 됐든, 지금 세계의 밖에 나간다고 해도 그대가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어쨌든 그렇게 도망간 그대는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두려움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과관계로 얽혀 돌아가는 세계에 자유는 없다. 현실은 그대를 얽매이고, 세상에서 잊힐 때까지 그대 곁을 맴돌것이다.

아니, 당사자도 아닌 내가 이 이상 관여하는 건 참견일 뿐이다. 이젠 내 영역이 아니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번 실패를 영양분 삼아 다른 곳에선 계속 살아남을 수 있기를... 자, 그럼 떠나간 이는 떠나간 거고, 이젠 남겨진 내 차례다. 이곳에 올 다른 이들을 위해, 그대가 갔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학습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새겨둔 사이, 그대가 둥지 한 모퉁이에 버려둔 모래시계가 움직였다.

내 이름은 필견. 사람들이 자기만의 투쟁을 할 때 태어난 단 하나의 신이자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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