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설정
2025-11-03 21:34조회 25댓글 0Garri
부질 없는 허상에 갇힌 기분이 들곤 할 때는 파랑새를 쓴다.
파랑새의 효력을 나도 잘 모르겠다. 인생이 나아지는 테를 보이지 않을 때마다 쓰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파랑새는 그저 고요함을 부르는 바다와도 같았다. 내 모든 부질 없는 것들이 하늘로 기화 되어 수증기로 돌아다니고, 에메랄드 빛이 들끓으며 선원들을 유혹한다고 익히 알려 진 바다가 나를 집어 삼켰다. 바다 안에는 나를 제외한 그 어떤 생명도 안 보였다. 그저 파랑, 파랑, 파랑이었다. 파랑 안의 산호초 열 댓마리가 있기를 바라며 헤엄을 쳐도 파랑 밖에 안 보인다. 음영이 짙어지는 파랑을 찾아 헤엄을 치지만 보이는 건 그냥 파랑이다. 그냥 파랑.
파랑새의 효력은 여기 까지이다. 내 뇌 속 부질 없는 것들을 없애는 것일 뿐이지, 내 인생 속 내 현실 속 문제들은 여전히 두고 있었다. 내 뇌에 착시를 일으켜 내 눈을 찌르고 뽑고 삼키는 파랑새는, 내 눈을 자신으로 교체하였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눈이 된 파랑새는 현실을 왜곡한다. 내가 보는 현실이 다르다는 걸 나는 어렴풋이 느끼지만, 파랑새는 떠나지를 않는다. 시간이 한참이고 지나서야 다시 나의 원래 눈이 내 눈두덩 아래 자리를 차지한다.
파랑새를 쓰는 이유를 내 지인들이 물어 볼 때면, 나는 똑같이 답을 한다.
“그냥”
그냥은 너무 무례한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답들은 더한 심연에 묻혀 있었다.
“너 같은 걸 잊고 싶어서”
“이 현실이 붕괴 되어서”
“너와 같은 우월한 자식들이 내 낮은 자존감을 건드리고 열등감이라는 트리거를 자꾸만 당겨 대서”
내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사실이다. 나는 필요 없는 존재의 집합체였다. 쓰레기가 한때 쓸모라도 있었다면, 나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나는 잘하는 것이라고는 열등감 느끼기 밖에 없었다. 질투는 많으면서 이를 노력의 원동력으로 삼지 않는 유치찬란한 어느 학생이었다. 학생으로서 보낸 학창 생활은 인간들로 하여금 역겨움을 유발할 정도이다. 어디 범생이 치곤 공부 못하고 일진 치곤 약한 애로 매번 대충 살아 온 인간이었다. 산업 폐기물이 나보다 나을 지경이다. 나는 아마 아주 끔찍하리만치 재미 없는 공상 과학 영화 속 유해한 화학 물질 덩어리일 테다. 매번 컬트 팬들에게 재해석이랍시고 더 거대한 농락을 당하는 한심한 덩어리.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조잡하고 유해한 화학 물질들을 내게서 분리하기 위하여 파랑새를 쓴다. 파랑새가 내 눈이 되면 인간이란 인간은 보이지 않았다. 파랑만 보였다. 나보다 잘난 인간은 심해에 묻혀 목소리를 잃었다. 허우적 대는 나의 팔다리는 본능적으로 묻혀 버린 그들을 피하였기에, 나는 파랑새에 있을 동안은 자유로웠다. 남들 없이 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없이 오직 짐승 하나로서 세상을 유영한다. 그러다가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 때 나는 필사적으로 피한다. 이는 인간잡이 배이기 때문이다. 작살이 나에게로 올 때 내가 필사적으로 피하더라도 언젠가는 아주 거대하고 의미 없는 그물에 걸려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끝을 보기 싫었다. 나는 파랑새에 더 있고 싶었다. 부탁이다. 부탁이다. 부탁이다. 부탁이다. 부탁이다. 부탁이다. 제발 내 눈물을 바다에 흘려 보내게 해줘. 내가 말한다. 아무도 안 듣는다.
결국은 그물에 던져져 다시 육지로 간다.
인간잡이들이 떠나면 나는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다시 창백한 모래 사이를 헤엄친다. 걸음이라고는 잊은 고래처럼 말이다.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