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0 22:01•조회 41•댓글 0•해윤
하늘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공기는 묘하게 따뜻했다.
그녀가 떠난 날과 똑같은 날씨였다
나는 늘 그렇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그녀가 남긴 목소리는 이제 바람 속에서만 들렸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만 그녀를 잊으라고"
하지만 그녀를 잊는다는 건
그녀를 두 번 죽이는 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녀에게 가는 길을 걸었다.
비가 내리는 골목
우리가 마지막으로 웃었던 그 자리
습한 공기 속에서 그녀의 향기가 났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희미한 불빛 속에 서 있는 그녀를 보았다.
난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을 내밀어 주었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처럼
난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비는 더 거세게 내리고
불빛은 하나둘 꺼져간다.
비 안개 속에서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엔 더 이상 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그녀도 다가왔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한순간 세상이 고요해졌다
소리도 빛도 숨도 사라졌다.
그녀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따뜻했다.
그러나 곧 그 온기는 물처럼 흘러내렸다.
⸻
다음 날 아침
비는 그치지 않았다.
강가에서 한 남자 시신이 발견되었다.
손에는 낡은 목걸이 하나
그리고 젖은 쪽지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