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떨쳐내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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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9 08:49조회 37댓글 1닉네임
인간에게 가장 큰 은총이자 가장 치명적인 죄악은 망각이라 했다. 그러나 사랑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오래된 메시지처럼, 삭제해도 어딘가의 서버에 남아 끝내 흔적을 드러내듯, 내 안의 너는 언제나 재생된다.

사랑은 망각을 통해서만 새로운 얼굴을 얻는다. 잊어야만 다시 사랑할 수 있고, 희미해져야 비로소 웃으며 회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모든 장면을 고해처럼 반복한다. 네가 웃던 순간, 무심히 흘린 말, 손끝의 체온까지. 잊지 못하는 기억은 결국 사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폐허 속에 나를 가두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고통조차 아름답게 위장된다는 데 있다. 미화된 상처는 마치 추억처럼 반짝이고, 나는 착각한다. 그때가 찬란했구나, 하며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한다. 왜곡된 그리움은 달콤한 독이며, 사랑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소모시킨다.

망각은 배신이 아니라, 사랑의 마지막 자비다. 흐려짐은 소멸이 아니라 해방이며, 사라짐은 결핍이 아니라 갱신이다. 사랑을 잊는다는 것은 사랑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고통의 구속에서 풀어내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그것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잊지 못한다는 미명 아래, 나는 너를 기념한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기억 속에서 나는 조금씩 소진되어 간다. 어쩌면 사랑의 진정한 완성은 기억이 아니라 망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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