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는 조개껍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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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1 21:31조회 124댓글 1양천리
- 알아?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래.

천야가 물망초의 꽃잎을 서서히 쓰다듬는다. 떨어질 듯 팔락이는 꽃잎이 더할 나위 없이 약골이다. 이런 한겨울에 물망초가 웬 말이람. 꽃의 줄기를 홱, 꺾어 천의 소매에 넣었다.

- 너 가져, 물망초. 다른 꽃도 찾자.

천야가 저 아래로 가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는 동안 나는 모든 세잎클로버를 짓밟고 있다. 이건 세잎을 향한 무시가 아니다. 천야가 네잎을 잘 찾도록 돕는 거다.

- 새청아, 이것 봐. 예쁜 장미다.

장미는 오월과 유월에 피는 온대성 상록관목이다. 겨울에는 피지 않는다는 말이다. 천야를 위해 이 온실을 지었다. 천을 윗자와[위해서].

- 천야야, 너는 내게 파란 장미야.

천야가 고갤 갸웃했다. 바깥 추위에 그쳐 비수[콧물]도 닦지 못한 인중이 마냥 귀엽게, 귀엽게만. 구순[입술]까지 내려올 뻔한 비수를 급하게 옷소매로 문지른다.

÷

이부[귀]를 때려대는 자명종 소리에 부스럭거리며 침구에서 일어났다. 가매[낮잠]는 자는 게 아니라더니, 역시나 오래 자버렸다. 1시 23분을 가리키는 디지털 시계의 숫자 번호가 깜빡였다.

- 계단황육[계란고기]찜, 먹을 테냐?

문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화의의 것. 푹 고아진 계단황육 냄새가 문틈으로 전해진다. 뜨끈한 장판에서 움직이기 미안하다[서운하다].

- 이런 상없는[버릇없는] 자슥, 장과[장아찌]에 송송이[깍두기]까지 놓았구먼 안 나오고 배겨? 뫼옵을[모시다] 테니 얼른 나오기나 하셔.

간신히 속눈썹을 들어올리고 정지[부엌]로 향한다. 화의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덜덜거리고 있었다.

- 맛있겠다.

- 저[젓가락] 들고 송송이 맛 봐라.

화의가 직접 애정을 담아 만든 송송이가 무척 맛난다. 눈물 찔끔 나오려는 걸 급히 눈꺼풀로 틀어막았다. 천야가 해주던 그 맛이다.

- 눈물 흘리지 말고 어여 시저[수저] 들라.

열심히 베[밥]를 퍼먹으니 어느새 바닥까지 보이고 말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숙수[요리사] 역할을 하고 있으니 화의 얼굴 보기가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 아직도 천야가 그래 그립던?

화의가 깍두기 세 개를 우걱우걱 씹으며 묻는다. 그만 대답하고 싶어도 이젠 대답할 수밖에 없음에 심장에선 눈물이 흐른다.

- 안 그립다면 거짓말일 거야.

겨울에 흩날리는 벛꽃잎만큼 보기 힘든 존재, 나의 천야. 이젠 너를 위해 벛꽃잎을 수놓았으니 조금이나마 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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