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urious.quizby.me/zeoz…냉장고에 반찬이 두 개 이상인 것은 분명한 사치라고 생각했다. 김치와 참치 통조림만 넘쳐난다면 백 년 넘는 인생도 거뜬히 버텨낼 수만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인생이 김치와 참치 통조림처럼 편안하고 순조롭지는 않다는 점이 늘 우를 괴롭게 했다.
소중한 우의 동생, 신. 우의 영원한 미(美)로 남을 신. 마치 겨울이 흘리고 간 실수를 봄이 부드럽게 닦듯 신이 흘린 잘못도 우가 전부 처리해야 하는 것이 일상이다. 겨울의 실수는 눈이다. 눈으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지옥이거나, 또는 굉장한 괴로움이다.
아직 우에게 눈이란, 행복보단 괴로움에 가까웠다. 자신의 부모님이 자신을 버렸을 시절이 아마 이맘때쯤. 그때부터 지나치게 발달한 책임감이 지금의 우를 짓누르고 있을 거다.
한낱 재미도 없는 우의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에겐 빨리 넘기고 싶은 내용이지만,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우의 서사를 읽고 눈물을 흘리고, 또는 비웃음을 선사할 지 모른다. 이래서 우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기에 살인과, 모든 욕망과, 범죄가 일어나지만 무관심은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진 않는다. 무관심 때문에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을 향한 관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겠지.
아직도 녹은 눈에 젖어 팔랑이는 낙엽이 군데군데 널려 있다. 이제 그만 찾아왔음 하는 은행 열매들도 바닥에 짓눌려 있다. 마치 이 가파른 사회가 우와 신을 가볍게 밟아 없애듯. 모든 은행 열매에선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불량 은행이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냄새가 없는 은행을 더욱 선호한다.
신에게 그토록 노란 동그라미를 밟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건만, 결국 새 부츠에 은행을 잔뜩 묻혀오고 말았다. 한 장 쓰기에도 아까운 물티슈는 넣어두고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수돗물에 부츠 밑창만을 물에 흘려보냈다. 손에 닿으면 얼을까 무서워 부츠 발목만 잡고 물에 흘리는데, 어디선가 들려온 자전거 소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포다. 주소는 전라남도. 부모님과 헤어졌던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