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독재자 [unname 단편]

설정
2026-01-21 17:48조회 77댓글 5unname
어느 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지붕 위에 거대한 눈알 하나가 나타났다. 눈알은 자신을 ‘진실의 감시자’라고 소개했다. 규칙은 단순했다. 국회의사당 반경 1km 내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즉시 눈알에서 발사된 레이저에 맞아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첫날, 연설을 하던 여당 대표가 “오직 국민만을 위해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잿더미가 되었다. 야당 대표가 “우리는 저들과 다릅니다”라고 외치자마자 역시 가루가 되었다. 사흘 만에 국회의원 300명 중 290명이 사라졌다. 살아남은 10명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의사당은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지만, 국민들은 환호했다. 드디어 거짓말쟁이들이 사라진 깨끗한 정치가 시작되었다며 축제를 벌였다.

그 난장판 속에서 ‘최 의원’이라는 초선 의원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살아남은 10명 중 하나였다. 국민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저 사람도 죽을까? 최 의원이 입을 열었다.

“저는 여러분이 싫습니다. 냄새나고 무식하고, 표 달라고 징징거리는 게 아주 귀찮아 죽겠습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하지만 레이저는 발사되지 않았다. 그것은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선되려고 돈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여기 들어온 이유는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 땅값을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권력을 잡으면 제 친척들을 다 낙하산으로 꽂아 넣을 겁니다.”

레이저는 여전히 잠잠했다. 침묵이 흐르던 광장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와!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여론은 기묘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최 의원의 ‘말’ 내용보다는, 그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그동안 위선적인 정치인들에게 너무나 지쳐 있었기에, 차라리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는 그의 솔직함이 시원하다고 느낀 것이다. ‘사이다 정치인’, ‘팩트 폭격기’. 최 의원은 하루아침에 국민 영웅이 되었다.

다음 선거에서 최 의원은 압도적인 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제부터 독재를 하겠습니다. 제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은 다 감옥에 보내고, 세금을 걷어서 제 호주머니에 넣겠습니다. 여러분은 개돼지처럼 일만 하세요.”

물론 레이저는 발사되지 않았다. 지지자들은 박수를 쳤다. “적어도 뒤통수는 안 치잖아!”, “거짓말쟁이들보다는 낫지!” 사람들은 최 의원의 악행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그가 ‘진실의 감시자’에게 죽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무한 신뢰했다.

최 의원, 아니 최 대통령의 통치는 지옥 그 자체였다. 복지 예산은 0원이 되었고, 모든 기업은 대통령 일가에 상납금을 바쳐야 했다. 반대 시위를 하면 그 자리에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하지만 그가 학살을 지시하면서 “시끄러우니까 다 죽여.”라고 말하면, 그것 역시 진실이었기에 그는 멀쩡했다.

나라가 망해가던 어느 날, 굶주린 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울부짖었다. “우리가 틀렸어! 저놈은 그냥 솔직한 악마일 뿐이야! 저 거대한 눈알이 우릴 구원해줄 리가 없어!”

그때, 최 대통령이 발코니에 나와 시민들을 내려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지붕 위의 눈알에게 명령했다.

“야, 이제 내려와. 철수해.”

그러자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눈알이 기계음을 내며 쪼그라들더니, 최 대통령의 손바닥 위로 날아와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것은 외계 생명체도, 신도 아니었다. 최 대통령이 거액을 들여 개발한 ‘살상 드론’에 불과했다. 그는 처음부터 이 기계의 주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어떤 말을 하든 공격받지 않도록 설정해 두었던 것이다. 다른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완벽한 쇼였다.

시민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최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이 기계, 사실 가짜였습니다. 제가 조종하는 거였어요.”

그 순간, 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세금을 도둑질한다고 했을 때도, 사람을 죽인다고 했을 때도 참았던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이 기계는 가짜”라는 말에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분노했다.

“거짓말쟁이! 우리를 속였어!” “솔직한 줄 알았는데 사기꾼이었어!”

사람들은 독재자가 ‘악마’여서가 아니라,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에 분노하며 의사당으로 쳐들어갔다. 성난 군중들에게 밟혀 죽어가면서 최 대통령은 생각했다.

‘참 이상한 놈들이야. 내가 너희 돈을 뺏고 가족을 죽일 때는 박수 치더니, 고작 기계 장난감 하나 속였다고 날 죽이네.’

최 대통령이 죽고 난 뒤, 사람들은 부서진 드론 조각을 광장에 모셔두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보며 기도했다.

“제발,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진짜’ 눈알님을 보내주세요. 우리를 다스려주세요.”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지옥이 ‘독재’ 때문이 아니라, 단지 ‘진실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광장에는 다시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고, 사람들은 또 다른 ‘솔직한 악마’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작가의말]
작가 unname입니다.
이번 작품은 한국의 정계, 그리고 민중들의 반응을 풍자하는 느낌으로 만들어봤어요.
앞으로의 방향성 고민중이나 당분간은 이렇게 단편으로 갈것같아요.
피드백이나 추천은 주시면 검토해보도록 노력할게요.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