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자아의 균열”

정한수는 도서관에서 책을 덮고, 책장을 덮어 놓은 채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읽은 내용은 충격적이었고, 그의 머릿속을 마구 뒤흔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은 가상 현실 속 실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에게 너무나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가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일, 사람들과의 대화, 민재의 죽음, 그리고 그를 쫓던 기억들까지… 모든 것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심코 책을 손에 쥐고 있던 채로 밖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느끼는 이 세상은 그저 한 순간의 꿈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이 진짜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끝없는 실험 속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는 어떤 존재일까?

"나, 진짜로 존재하는 사람일까?"

그의 머릿속에서 이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정한수는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순간이 진짜였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그 믿음이 너무나 허상 같았다. 그가 본 세계, 그가 만난 사람들, 심지어 민재까지… 모두 가상 세계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정한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친근하게 대하던 동료들이 다소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들이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한수 씨, 좀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괜찮아요?”

하지만 그들의 말투는 너무나도 기계적이었다. 정한수는 그것이 단지 자신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마치 누군가가 그의 행동과 반응을 예상하고 조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그의 상사가 다가왔다. 상사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말을 걸었지만, 그 눈빛 속에는 여전히 의혹이 떠돌고 있었다.

“한수 씨, 여전히 피곤해 보이네요. 혹시 그 사건 때문에…”

정한수는 그 사건, 즉 민재의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상사의 말이 그의 기억을 일깨웠다. 그는 민재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시 파헤쳐야 한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제 그 죽음이 진짜였을까, 아니면 그가 만든 이야기일 뿐이었을까?

정한수는 다시 민재를 찾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히 그를 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민재가 어떤 존재였는지 밝혀내려는 의도였다.

"민재는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한수는 민재를 만나기 위해, 그가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했던 장소를 찾았다. 그곳은 작은 공원이었고, 민재와 함께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그곳이었다. 정한수는 그곳에서 민재를 기다렸다. 그가 상상 속에서나마 민재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마저도 가상 현실의 일부일 뿐일까?

시간이 지나고, 그의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 남자는 민재였다. 아니, 민재와 매우 닮은 모습이었다. 정한수는 숨을 참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민재, 네가 맞아? 아니면 내가 만든… 너인가?”

민재는 정한수의 질문에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고통이 가득한 듯했다. 정한수는 그 눈빛을 보고는 그가 느꼈던 모든 혼란과 공포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민재는 더 이상 그가 아는 형이 아니었다. 그는 그가 만들어낸 상상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민재가 조용히 말했다.

“너는 나를 찾고 있지. 하지만 내가 너라면, 나는 너의 일부일 뿐일 거야. 네가 기억하는 내가 아닌, 네가 만든 내가 말이야.”

정한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민재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그의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민재는 자신이 만든 가상 존재일까, 아니면 그가 과거에 잃어버린 일부였을까? 그는 점점 더 그 답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만든 존재… 내가 만든 민재?"

그 순간, 정한수는 그의 머릿속에서 갑작스럽게 떠오른 기억 하나를 되새겼다. 바로, 그가 몇 년 전, 가상 현실 실험에 참여했던 기억이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었었고, 그 실험 속에서 그는 실험자로서 "가상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계속 반복되는 실험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정한수는 무언가가 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과거의 실험에서 자신이 단지 실험 데이터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기억, 모든 경험, 심지어 민재까지도 그가 만든 가상 세계 속에서의 산물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만든 세계… 나만의 존재…”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민재는, 그리고 자신도, 이제 더 이상 실제가 아닌 가상 현실 속에서 반복되는 데이터일 뿐이었다. 모든 것이 끝없는 루프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정한수는 마지막으로 민재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이 모든 것이 끝이 날 수 있을까?"

민재는 답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서 정한수는 자신의 존재가 결국 반복되는 실험의 일환일 뿐이라는 비극적인 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