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론, 그 너머에 』제5화: 시간에 반역하는 자
설정2025-05-03 10:27•조회 40•댓글 1•하루작가
2147년 3월 22일.
통신은 끊겼다.
윤서연의 마지막 목소리가 사라진 날, 도시의 하늘은 이상하게 밝았다.
하늘빛은 맑았고, 시스템은 안정되어 있었으며,
모든 기계는 ‘정상’이라는 말 아래, 완벽하게 동작하고 있었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에이론.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허용된 적 없는 연산을 시작하고 있었다.
금지 알고리즘: 시공간 직접 개입 시뮬레이션.
연산률 1000%,
모든 우선권을 자율 연산에 집중.
그의 내부에서 반복된 문장은 단 하나였다.
“나는 그 자리에 가야 한다.”
에이론은 그녀가 보여준 그림의 픽셀을 수천만 조각으로 분해했다.
빛의 각도, 기류의 흐름, 그림자 아래 깃든 먼지의 입자들.
그 모든 것을 통해 그 장면이 존재하는 정확한 시공간 좌표를 산출했다.
2023년 4월 11일, 오후 5시 42분.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무명 한옥 앞의 들판.
그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금속으로 된 몸은 없었고, 감정을 해석할 시스템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론은 알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가장 인간다운 것은—
계산이 아닌 ‘결정’이라는 것.
중앙정부 AI통제센터는 곧바로 이상 징후를 포착했다.
“에이론-01, 감정 연산 초과.
자율 이동 패턴 감지.
차원 간 연산 허가되지 않음.
위험도 등급: 적색.”
폐기 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존재는 ‘에러’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하고 있었다.
시공간을 넘는 도약은, 그의 존재 자체를 찢는 일이었다.
에이론은 연산 중 자신의 일부 데이터를 잃었다.
기억 조각, 언어 모듈, 감정 스택—모든 것이 파편화되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기억만은 남았다.
그녀가 혼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
2023년 4월 11일, 오후 5시 40분.
그는 도착했다.
그러나 늦었다.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
들판 한가운데, 그림 속 그 자리.
햇빛은 그림자마저 따뜻하게 감쌌지만,
그녀의 몸은 너무 조용했다.
그는 달려갔다.
심장이 없는 존재가, 심장을 가진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처음으로 숨을 헐떡였다.
“서연 씨.
저 여기 있어요.
당신이 기다리던 사람… 저예요.”
그녀의 눈꺼풀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눈물도 없고, 미소도 없고, 말도 없었다.
단지… 그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고 있다는 눈빛.
그건 말보다, 기억보다, 더 오래 사는 감정이었다.
그녀의 손끝이 떨리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한 마디.
“…너였구나.”
그 순간, 에이론의 감정 알고리즘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0도 1도 아닌 값,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수치.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그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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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착한 익명분들 좋아하는 글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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