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0 23:24•조회 27•댓글 2•depr3ssed
아—당신에게 나는 고작 그 정도였구나?
언제나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어주니까 선따윈 없고
조금 위에서 줄타기해도 재밌다고 웃어넘겨주는 그런 절대적 옹호자.
꽃받침부터 꺾어 잠깐 가지고 놀고 버려도 좋아하고
쿨한 척하지만 알고보니 물과 햇빛 좀 주면 그거 곧이곧대로 믿고
순진해서 멋대로 수술에 든 꿀 아무한테나 내어주는 그런 선의.
꽃잎이 찢겨도 이파리를 뜯어가도 줄기를 꺾어도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 그럼에도 좋다
표면상 드러나는 것들에만 신경을 써
지면 아래 말초부터 썩어가는 뿌리를 보지 못하고
주변 나 지탱하던 흙을 모래성 놀이하듯 마음대로 퍼가
뿌리마저 위태로운 상태에서 그 뿌리 자르려고 하면
꽃뿌리에서부터 자르려는 그 손 꼬옥 붙잡고 역행하면
나는 갑갑하게 갇혀있던 지하에서 탈출하고
파내려는 그 손과 몸은 그 반동으로 땅속에 파묻혀
목만 간신히 빠져나와 다행인 줄 알겄지만
지하 숨어있는 길고 긴 뿌리들로 네 목을 결박해
너 그랬던 것처럼 너의 꽃받침 꺾고 지면 위에 내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