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은 얼어붙은 대기 속으로 희미하게 흩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에 도착한 후로 시간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였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이곳이 그녀가 없는 세상이며, 나는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끝없는 회색빛 공간,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녀가 없는 이 세계는 나에게 영원한 고독과 다름없었다. 나는 그녀를 포기했고, 그녀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주었지만, 정작 나는 죽음 앞에서 그녀를 놓지 못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의 발자국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나는 그저 기다렸다. 그녀가 오기를.
어느 순간이었다. 흐릿한 안개 저편에서 익숙한 온기가 느껴졌다. 작고, 애처로운 온기. 설마. 설마 그녀일까. 떨리는 마음에 나아갔다. 죽음의 세계에서, 나의 심장은 멈춘 지 오래건만, 어째서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 걸까.
그리고 보았다.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 홀로 선 그녀를. 그녀의 어깨가 애처롭게 들썩이고 있었다. 뺨 위로 투명한 물줄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녀가 울고 있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각, 사각. 풀잎을 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의 발자국. 내가 오기를 그녀도 기다렸을까. 이 고독한 죽음의 끝에서.
나를 발견한 그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였다. 나를 보았지만, 나를 온전히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혹은, 나를 볼 수 없어야만 한다고 여기는구나. 하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이 순간마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내 손끝에 닿는 그녀의 온기는 여전히 차갑고, 동시에 뜨거웠다.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녀의 감촉. 그 순간, 나의 메마른 눈가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서 있었지만, 여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녀가 떠난 그 순간부터 오로지 그녀만을 찾아 헤맨, 이토록 무력한 그녀의 사랑하는 이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데려갈 힘도 없고, 그저 그녀의 곁에서 울 수밖에 없는 무능한 존재였다. 눈물을 훔쳐주던 손을 그대로 들어 그녀의 부드러운 볼을 부드럽게 감쌌다. 느껴지지 않는 온기. 전해지지 않는 마음. 이제는 더 이상 함께 걸을 수 없는 발자국.
그녀의 속삭임이 비수처럼 박혔다. 아니, 나는 저승사자가 아니야. 나는 그저 너의 그일 뿐인데. 너를 데려갈 수 없음에,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안타까워해야만 하는 이 비극에 사무쳐 눈물을 흘릴 뿐인데. 이 공간은 영원히 이별의 장소일 뿐. 우리는 영원히 서로를 바라보며 멀어질 수밖에 없겠지. 내 발자국은 사라졌고, 그녀의 발자국도 이제는 희미해져 갈 것이다. 홀로 남겨질 그녀가 너무나 두렵고 아팠다. 하지만 나 또한 발자국을 남길 수 없는 이 세계의 존재.
나는 그저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그림자가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을. 그리고 그제야, 나의 존재 또한 점점 옅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아,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만나지 못했음을 애통해하며 나는 천천히 흔적도 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 소멸해갔다.
사라지는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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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애 || 내가 저승사자인 줄 알았던 너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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