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6 14:57•조회 65•댓글 4•자울자울
신부님.
제발 제 이야길 들어주세요.
저는 그날, 제가 기억하는 시점부터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
어둡고 캄캄한 주변,
왜인지 일렁이는 시야,
머릿속을 뒤흔드는 생각 때문에,
그곳이 어딘지를 잊어버린 듯했습니다.
겨우 어느 건물에 도착해 발을 들였을 때는,
정말이지.
죽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내가 아니라,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가
찬 바닥에 스러져 있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줄만 알았습니다.
천천히 다가가 그 눈을 맞추었을 땐,
정말로, 정말
...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상하게도 말이죠.
나는 아직은 살아있는 그녀를 위해
하얀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로 주고 싶었습니다.
아파하는 그녀가 기운을 차리면 보여주려고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는 항상 쓸데없는 행동으로 모든 걸 망치곤 합니다.
어리석은 그때의 나는 차디찬 그곳에
그녀를 두고 나갔어요.
나가서 온 숲을 뒤지며 꽃을 찾아봤지만
당연하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을 땐...
–
아, 여기서부터는
오직 장미 속에 파묻힌 제 모습만이 기억납니다.
왜 일까요 내가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것은
어쩌면, 누군지 모르는 그녀가
빨간 꽃무덤 위에서
눈을 감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감은 게 아니라, ...아시죠?
아무튼.
기억이 나는 시점부터 저는 매일 매일,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요.
그 매일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곤히 잠든 그녀를 돌보는 일이 내게는,
너무도 고되었습니다.
직접 눈을 맞추고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사랑을 속삭여주고 싶은,
그녀가 궁금한 마음만 한가득인데
어째서 그녀는 잠들었을 뿐인가요.
마지막에는 그녀가 미워 떠나려고도 했어요.
아, 이 사실은 비밀로 해 줘요.
그녀가 들으면 슬퍼할 겁니다.
–
... 사실은, 다 거짓말이예요.
떠나려고 했단 거
미웠다는 거
그녀를 모른다는 거
함께한 시간을 모두 잊었다는 거
전부 다 거짓말입니다.
신부님께서는 부디,
저를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그냥 보고 싶었어요.
나는 그냥,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눈을 뜬 모습은 본 적이 언제인지
그 따뜻함을 느낀 게 언제인지
아득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 감각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저를 더 힘들게 하지만 괜찮아요.
그 기억이 나를 더 일깨워주기도 하니까.
저는 그녀가 없는 밤을 수없이 지새며
흘린 눈물에 가득 잠겼지만
이제는 빠져 나와야한다는 걸 압니다.
신부님 말씀은 이해했어요.
저도 알고있지만 저는 오늘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가 없는 이곳에서
그녀의 흔적을 밟고 있습니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려울 만큼
–
... 내일부터는 정말로 마음 한 켠에.
들여다보지 못하게,
그렇게 곱게만 놔둘게요.
부디 오늘 밤을 마지막으로
그녀가 내 꿈에 나타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