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는 여름

설정
2025-08-30 17:21조회 291댓글 14바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던 그 여름.
우리는 모래사장에서 끝없이 웃으며 뛰어다녔다. 땀에 젖은 셔츠,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 그리고 손바닥에 쥐어온 조개껍데기 하나.

“이거, 나중에 녹슬면 네 탓이다.”
네가 장난스럽게 내 손바닥에 껍데기를 올려주며 말했다.

나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누가 그러더라, 조개껍데기는 녹슬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이건 변하지 않을 거야. 마치 우리처럼.”

그때 우리는 웃고 있었다. 서로의 눈길에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이 계절이, 이 하루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나날. 바다는 파도 소리로 약속을 삼켜냈고 모래는 발자국을 금세 지워냈다. 그러나 손에 쥔 껍데기는 오래 기억해 줄 무언가가 되어줄 것 같았다.

그러나 믿음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계절이 몇 번 바뀌자, 우리의 마음은 바다와 달리 쉬이 변해버렸다. 너는 다른 도시로 떠났고, 나는 이곳에 남았다.
한때는 같은 별을 올려다보던 시선이 어느 순간 서로 다른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이름을 부르던 버릇마저 사라졌다. 마침내 남은 건, 이별이라는 짧고 차가운 단어뿐이었다.

그럼에도 조개껍데기는 여전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햇살을 머금은 듯 희고 매끈한 그 껍데기. 네가 내 손에 쥐어주던 순간 그대로.

시간은 흘러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껍데기는 내 방 구석에서 여전히 반짝인다. 녹슬지 않는 껍데기처럼, 우리 사이의 그 여름 또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안다. 청춘이란 끝내 변해버리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나눴던 순간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다의 빛처럼, 조개껍데기처럼.


—————
√ 취미가 아닌 재미로 쓴 글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