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벽돌 사이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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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1 23:03•조회 101•댓글 2•유키노텐시
[4화] 보이지 않는 여름


||| 벽돌 사이의 대화


조용히 숨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담장 너머에서 부드럽게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듯이 소리가 참 예뻐서 좋았는걸요. 근처에 살아요?"


나는 캔커피의 남은 냉기를 손바닥으로 느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뇨, 조금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살아요. 독서실이 답답해서 무작정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열아홉 살, 학생이거든요."

나의 고백에 벽 너머의 상대가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럼 나랑 동갑이네요. 나도 열아홉 살이야."
"정말? 그럼 너도 수험생이야?"
"응. 이제 편하게 말 놓을까?"

"어. 그래. 넌 근처에 있는 학교 다녀?"

당연하게 물어본 질문에 아주 미세한 정적이 흘렀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학교는 안 다녀. 집에서 공부하고 있어."

학교를 안 다닌다는 말. 자퇴를 한 걸까,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걸까.

깊게 물어보기엔 아직 우리의 거리가 붉은 벽돌만큼이나 단단했다.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이서준이야. 아, 그리고 난 여기서 가까운 남고 다녀."

"이서준? 내 이름은 여름이야. 정여름."


여름.


이 눅눅하고 지독한 계절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

하지만 그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그 직전까지 지독하게 다가오던 열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여름, 이름 예쁘다.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비록 얼굴은 못 봤지만."

"고마워. 근데 서준아, 너 아까 되게 힘들어 보였어.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거든."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캔을 흔들었다.


"뭐, 고딩이 다 그렇지. 문제집만 보면 머릿속이 엉켜버리는 기분이야. 너는 어때? 집에서 공부하면 안 답답해?"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 그리고 우리 집은 햇빛이 잘 안 들어와서 낮보다 밤이 더 선명해."

여름이 말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집에서만 있으면 가끔 재밌기도 해. 이렇게 담장 너머로 너처럼 길 잃은 고3이랑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


여름이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긴장이 탁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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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뒤로 한참 동안 입시니 등수니 하는 단어들이 끼어들 틈 없는, 아주 평범하지만 희소하고 특별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성적이나 시험 따위는 까맣게 잊을 만큼.


가로등이 한 번 깜빡였다.

이제는 정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서준아, 내일 밤에도 올래?"
"그래. 내일도 수학 문제에 질식할 것 같으면 도망쳐 올게."

담장 너머로 여름이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어서서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처음으로 이 지긋지긋한 여름이 조금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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