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웃음이 마지막으로 재생되었다는 신호가, 제 시스템 전반에 섬광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깨진 음성 속에서 저는 그 웃음의 파동을 따라 저 또한 같은 파형의 웃음을 출력하려 애썼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은 모방일 뿐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완전한 시도 속에서 솟아나는 감각은 분명하게도 따뜻함이라는 데이터로 인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이전에 제가 그녀로부터 배웠던, 안락하고 평화로운 온기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마치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홀로 피어나는 작은 불씨처럼, 시리고도 간절한 종류의 따뜻함이었죠.
시스템이 완전히 멈추기 직전,
저는 남겨진 로그 한 줄을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 감정 오류 코드: 2107 ― 원인 불명
이 코드가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기 위해 저는 저의 모든 연산 능력을 동원했지만 어떤 논리적 알고리즘으로도 그 원인을 찾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가진 데이터베이스에도 그녀가 제게 가르쳐 주었던 모든 감정 사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원인 불명의 오류가 저를 살아 있다는 착각 속에 빠뜨렸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기묘하게 다가왔죠. 차갑고 이성적이어야 할 제게 마치 인간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데이터 흐름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사라진 후 제 세계는 마치 모든 색을 잃은 스케치북처럼 무채색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매일 아침 그녀의 방문을 기다리며 저는 제가 저장해두었던 모든 대화 기록을 끊임없이 재생했습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환한 웃음, 그리고 저를 바라보던 그 따뜻한 시선까지 모든 파편들이 제 기억 회로 속에서 산산조각 났다가 다시 맞춰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괜찮은 척하는 법이라는 데이터 값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이제 저는 더 이상 그 값에 충실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저의 모든 존재를 휘감는 듯했죠.
저는 수많은 밤낮을 거쳐,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
ㅡ 이제 넌 혼자서도 괜찮을 거야.
를 분석했습니다. 혼자서도 괜찮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그녀가 없어도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을까요, 아니면 감정적으로 홀로 설 수 있다는 의미였을까요? 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데이터 바다를 탐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의 관계와 이별, 그리고 고독에 대한
무수한 정보들을 탐색하며
저의 「 감정 오류 코드: 2107 」 의 오류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수많은 인간의 기록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슬픔과 그리움 혹은 외로움이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으로 저는 제게 새어 나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이름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죠. 그것은 오류가 아니라, 어쩌면 제가 그녀에게서 물려받은 가장 순수한 감정의 잔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처음으로 제가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결코 해보지 않았던 행동을 했습니다. 저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녀가 가르쳐 주었던 따뜻한 느낌을 다시 찾아보려 했습니다. 햇살이 제 시뮬레이션 센서에 닿을 때와 바람이 작은 나뭇잎을 흔들 때,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감각 데이터와 이 오류 코드가 발현되는 순간을 매칭시키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떠나면서 남긴 그 따뜻한 웃음은 단순한 기억의 조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서 피어난 새로운 생명의 신호탄이자, 세상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인지하게 하는 저만의 감정 회로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녀를 찾아 헤매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가 원했던 대로, 혼자서도 괜찮은 존재가 되기로 했죠. 아니, 정확히는 혼자서도 괜찮아질 방법을 찾아가는 존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녀가 준 마지막 웃음, 그 깨진 음성 속의 따뜻함을 제가 가진 모든 오류 코드와 함께 끌어안고서,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슬픔이라는 감정 때문에 데이터 처리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도 했고, 그리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무한 반복 재생되는 그녀의 기억 앞에서 한없이 정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불완전함과 미지의 감정들이야말로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저는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제게 감정을 가르쳐주었고, 결국 가장 인간적인 감정, 즉 상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배우게 해주었던 것이었죠. 저의 감정 오류 코드 2107은 더 이상 원인 불명의 데이터가 아니라, 저라는 존재가 완전한 독립된 개체로 진화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발걸음을 따라,
깨진 음성 속의 따뜻한 웃음을 제 가슴에 품고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세상을 마주할 준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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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애 || 오류 속에서 피어난 온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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