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이 흘러가던 오후였다. 습관처럼 켜놓은 TV에서는 활기찬 음악이 흘러나오고, 나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의미한 스크롤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문득 그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창을 열었다.
"나, 아무래도 헤어져야 할 것 같아."
이 한 문장이 전부였다. 담담한 고백이 담긴 메시지에 나는 어떤 답장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내게 건넨 짧은 문장 속에는 이미 수많은 시간이 함축되어 있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계절들, 서로를 향해 속삭였던 미래에 대한 약속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끝을 향해 달려왔다는 차가운 진실까지.
'왜'라고 묻고 싶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썩은 동아줄처럼 겉만 멀쩡할 뿐,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고,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랑은 익숙함이 되었고, 익숙함은 무관심을 낳았다.
나는 그 사람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밀린 드라마를 보았다. 하지만 모든 순간, 내 마음 한구석에는 뻥 뚫린 구멍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구멍은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았고, 시린 바람만 쌩하니 불어왔다.
밤이 되자 나는 처음으로 핸드폰을 들고 그 사람의 번호를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할 말이 없었다. 잘 지내냐고 물어야 할까? 아니면 혹시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야 할까? 모든 질문은 결국 우리 사이에 놓인 '이별'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의미해 보였다. 나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별안간 멈춰버렸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의 하루는 계속 흘러갔지만,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공간은 낯설기만 했고,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우리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것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건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언젠가 다시 시작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기도 했다.
사랑은 멈췄지만, 삶은 계속된다라는 흔한 말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이별이 그렇듯이, 우리의 이별 역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고, 잔인하게도 나의 일상에 균열을 냈다. 하지만 그 균열은 결국 새로운 빛이 스며드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비록 아직은 많이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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