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 당신은 별처럼 웃었다》 4화: 잊어야 하는 이름들
설정2025-08-08 08:30•조회 5•댓글 0•EIEI 🫶
〈4화〉잊어야 하는 이름들
그날 이후,
리아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내가… 진짜 리아나가 맞을까?”
거울을 볼 때마다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몰려왔고,
누군가의 기억을 훔쳐 쓰는 듯한 죄책감이 등줄기를 따라 흘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녀를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그날 오후.
4반 마법이론 수업 시간,
강의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얼굴이 들어왔다.
“전학 온 마리우스 펠른입니다.”
“조용히 들어와 앉아.”
리아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마리우스.
검은 머리, 회색빛 눈동자, 차가운 분위기.
그는 그녀를 보는 순간, 아주 미세하게 멈칫했다.
눈이, 딱 한 순간 흔들렸다.
“……”
그건, ‘모르는 사람’을 볼 때의 반응이 아니었다.
오히려—너무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누군가를 본 표정.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그가 먼저 리아나에게 다가왔다.
“리아나… 벨로체.”
“…네?”
“살아 있었구나.”
리아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떨리는 손끝이 그녀를 향했다.
“그날 이후, 네가 사라졌다고 했을 때…
난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
“…저를… 알고 계세요?”
마리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리아나가 사라진 날, 연구동에서 함께 있었던 실험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너, 나한테… ‘기억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었잖아.”
“그건… 제 기억엔 없어요.”
“…그래. 너, 기억이 없구나.”
그 말은 부드러웠지만,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너… 그 리아나가 아니지.”
“…….”
기억이 없다는 건 죄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짓된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는 일이었다.
리아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마리우스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두 사람의 대화를 멀리서 보고 있었다.
시아른.
그는 복도 끝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질투도 의심도 아닌— 무서운 직감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이대로 두면, 그녀가 망가질 수도 있어.’
그날 밤.
리아나는 창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또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이번엔 유난히 붉은 빛이었다.
마치 피처럼, 누군가의 기억처럼.
“왜… 나만 기억하지 못할까.”
“나는, 왜 태어난 걸까.”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인지, 환청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저 멀리에서.
“진짜는 죽었어.
가짜는 살아남는다.
그러니 이제, 이름을 버려.”
✦ 다음 화 예고 ✦
〈5화〉기억하지 않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 마리우스가 말한다. “넌… 그녀가 아냐. 그런데 왜, 똑같이 웃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