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戀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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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31 08:04조회 58댓글 2백청춘
창호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종이 위에 걸려 있었다. 오래전의 먹물은 번지고 번져, 글자인지 얼룩인지 모호한 흔적이 되었고, 손끝으로 그 위를 따라가자, 이미 사라진 숨결이 아직도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빛은 종이를 밝히는 대신, 오히려 더 깊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마치 남겨진 흔적과 지워진 기억이 한 자리에 뒤엉켜, 어느 쪽도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채 머무는 듯했다.

나는 창을 닫지 않았다. 바람은 여전히 드나들며 종이를 떨게 했고, 그 떨림 속에서 오래된 무게가 미묘하게 살아 움직였다.

밤이 닥쳐 등불을 켜자, 그림자는 더 짙어졌다. 나는 종이를 덮었으나, 그 위에 얹힌 세월의 잔해는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사라진 것과 남은 것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듯 뒤엉켜, 내 가슴 속까지 물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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