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6 17:12•조회 45•댓글 0•구로
비 오는 날이면 E는 꼭 우산 없이 뛰어왔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젖은 머리를 털면서 웃었다.
―또 비 맞았네.
― H가 우산 들고 나와줄 줄 알았지.
장난처럼 말하는데, H는 그 말 하나에도 괜히 마음이 흔들렸다.
E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한테나 자연스럽게 다정했고, 사람 기대하게 만드는 데 재능이 있었다.
H는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혼자 의미를 붙였다.
둘은 자주 같이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시답잖은 얘기를 했다.
그 시간이 H한테는 너무 소중해서 가끔 겁이 났다.
언젠가는 끝날 것 같아서.
겨울쯤이었나.
E가 뜨거운 컵을 손으로 감싸 쥔 채 말했다.
―나 남자친구 생겼어.
H는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 그래? 어떤 사람이야?
― 좋은 사람이야. 나 엄청 잘 챙겨줘.
E는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H는 알았다.
자기는 절대 E를 저런 얼굴로 웃게 만들 수 없다는 걸.
마감 시간쯤, H는 결국 조용히 말했다.
― 나 너 좋아했어.
E의 표정이 천천히 굳었다.
― …미안.
예상했던 대답인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H는 괜히 웃었다.
― 아냐. 네가 미안할 건 아니지.
잠깐 침묵이 흐르고, 밖에서 빗소리만 들렸다.
―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그날 이후 E는 한동안 카페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H도 굳이 붙잡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둘 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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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헤테로
H: 레즈비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