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컵 속 에이드가 찰랑거린다. 컵이 차갑고 투명한 물이 줄줄 흐른다. 손바닥에 가득 묻어 팔로 또 즐줄 흐른다. 질퍽하게 젖었다. 축축하게 녹았다. 얼음이 서로 탁 탁 소리를 낸다. 여름에 흩뿌려진 이슬처럼 찰박찰박.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린 어땠을까.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돌아가는 산길이 고르지 못해 차가 덜컹덜컹 흔들렸다. 멀미 보유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 타며 힘겹게 동네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송하영 -이쯤에서 등장한 짐승 소개. 사우디아라비아 이후로 처음이다. 이름 뜻은 별 거 없다. 그냥 진짜 송하영을 닮아서. 딸바보 아빠를 가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탓에 여행도 자주 가고 인심도 존나게 넓으시다.- 의 아버님께서 친히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우리는 딸바보 아버님의 걱정 -남친이 있는지 걱정 하셨다. 송하영 이새끼도 존나 독특한 게 지 좋다는 180cm 남자들 다 버리고 키 작고 축구 좀 하는 존나 작은 새끼를 짝사랑한다.- 을 들으며 동네로 돌아갔다. 가다가 잠시 졸았더니 금세 청유 고등학교가 보였다. 주위에 둘러진 바다가 파란 빛을 뿜었다.
질퍽질퍽열병
- 으아 드디어 도착했다아.
- 아저씨 감사함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다 앞에 멈춰선 차에서 내렸다. 바다애서 찬 바람이 휙 불었다. 옆에 개새끼는 으추으추, 추워잉. 같은 요상한 소리를 내며 저지를 두르고 있었다. 진짜 개귀엽다. 지금 집에 가서 자고 싶은데 짐승들은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며 진대 타임을 가지자고 근처 카페로 쇽 쇽 들어갔다.
하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였다. 내 고백 찬 그 줄넘기남 있잖아. 걔가 나한테 연락하더라? 우리랑 축구 한 그 새끼? 어어. 그 새끼 축구 존나 못함ㅋㅋㅋㅋㅋ 왜 고백함? 이런 흐름이었다. 덩치 큰 순애남이 같은 반 철벽녀가 고백을 안 받아준다고 엉엉 울었고, 우리는 등신병신 하며 위로해줬다. 크 멋있는 새끼. 고백을 했다는 것 자체로 저 덩치값 못 하는 새끼가 멋있어 보인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이후 노래방에서도 순애남은 아이유의 네버엔딩스토리를 부르며 울었다. 그으리워하면~ 언젠가아~ 훌쪅 만나게되는~ 크흡. 저건 좀 멋없다. 누가 사랑에 울어? 내가 매년 여름에 운 이유는 개새끼 때문이 아니라 열병이 너무 아파서 그런 것이다. 진짜로. -아니다. 분명 개새끼를 생각하며 울었다.- 아무튼.
짐승들은 도파민에 취해 순애남을 찰칵찰칵 찍어 스토리에 올렸다. 저 사진은 조만간 그 철벽녀 갤러리로 들어가게 되겠지. 역시 병신. 그래도 나는 이 새끼들 앞에서 울지는 않았다. 어떤 망신을 당할 줄 알고 그러냐. 쟤도 참 힝상 놀림 -교실에서 항상 순애남과 철벽녀를 엮고 논다고.- 받으면서 또 저런다. 저러고 길에서 우연히 그 철벽녀 마주치면 좋다고 미치겠지. 철벽녀는 이 새끼 존나 싫어하던데.
- 야, 근데 걔 진짜 어때? 나 걔 친군데.
- 걔는 너 진짜 좋아해ㅋㅋ 2년이나.
- 더 좋은 사람 찾으라고 해.
이런 식으로 한 5번 차였나? 솔직히 저 대화를 하며 좀 뜨끔했다. 개새끼도 저런 반응이면 어떡하지. 개새끼도 겸송 끝판왕 찍고 과분하다고 드라마를 쓰면 어떡하냐고. 보통 여자들은 자기 객관화가 안되나? 철벽녀도 이 별명 때문에 차가워 보이지 실제로 헥헥사람조아가나디 그 자체다. -물론 개새끼가 더 귀엽다.- 이 정도면 그냥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훌쩍이는 순애남 등을 턱 턱 두드려 주었다.
- 으엉엉 내가 왜 그렇게 싫은ㅠ데.
- 아 시발 콧물 묻잖아.
이후 우리는 오랜만에 인생네컷을 찍으러 갔다. 다들 고데기를 조질 때, 나랑 짐승들은 이상한 머리띠를 쓰며깔깔거렸다. 크킄, 야 니 선글라스 5개 써라. 이 개새끼 모자는 뭐야? 나는 그 모자를 개새끼에게 푹 씌웠다. 그 덕에 방금 앞머리와 옆머리 고데기를 마친 개새끼의 머리가 눌렸다. 당황하는 꼴은 영락없이 개새끼였다. 흐헤헤 귀여워. 잘 어울린다. 이거 쓰고 찍어 주면 좋겠··· 퍽.
- 두더지 씨발 뭐하냐?
- ㅋㅋㅋㅋㅋ개새끼 잘 어울린다.
- 개 대가리가 두 개ㅋㅋㅋㅋ 아 개웃기네.
- 나댄다?
아 개아프다. 손 존나 매워. 어떻게 저렇게 작고 얇은 손으로 이렇게 살벌하게 사람을 때리지. 내 생각엔 개새끼가 복싱을 한다면 여자 복싱 신기록 하나 세울 것 같다. -사실 개새끼에게 힘으로는 항상 지게 된다. 나는 무엇 하나도 개새끼에게 이길 수 없기 때문에.- 5년 내내 처맞다 보니 익숙해진 것도 있다. 사랑이 이렇게 아픈거라면 사랑 그딴 거 안 하지.
나는 상당히 아프고 -실제로 여름마다 아프다.- 힘들다. 사랑? 그만 할 수 있으면 진작 때려치지. 방법을 모르니까 이러고 있는 거 아니겠냐. 무려 첫사랑인데. 5년동안 엉겨 붙은 정이 있어서 사랑을 표현 할 수도, 사랑을 포기 할 수도 없다. 질퍽질퍽 녹아서 떨어질 수 없다. 머리카락에 붙은 껌처럼. 껌이 머리카락에 붙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아? 잘라야 해.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져 죽어간다.
오락실에서 5살 어린이처럼 VR을 끼고 롤러코스터를 탔다. 개새끼는 한창 꺅 꺅 거리다 지루했는지 반응이 잠잠해졌다. 나도 안 타려 했지만 짐승들 손에 이끌려 동굴 롤러코스터를 탔다. 웁. 토할 것 같다. 내 안색이 지랄난 걸 느꼈는지 개새끼가 계속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걱정 시키기 싫어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얗게 질려 웃는 내 모습이 얼마나 가관이었을까.
- 야 야 두더지.
- 나 존나 심심한데 나가실?
내 상태를 기어코 눈치 깐 개새끼님이 산책을 요구하신다. 주인으로서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그닥 간절한 눈은 아니었다. 그냥 두더지가 개새끼의 눈이 예쁘다고 생각했을 뿐.- 달려 나가죠. 네 제가 그렇죠 뭐. 모에화와 별개로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이렇게 잘 숨겼는데 -아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상태였다.- 알아봐준 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수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나이수. 나가자.
사라지지 않을 여름은 윤슬처럼 드물게 빛나지 않았다.
여름이라는 이름 아래, 그 자체로.
청명하게 모든 부분이 빛나고 있었다.
너처럼.
찰랑찰랑찰랑찰랑찰랑찰랑···.
https://curious.quizby.me/ugun…^ 퇴고 없어요 여름을 영원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