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사자} 눈물이 달력을 짓이겨 놓았습니다. 눈물 한 방울의 힘은 약했지만, 그 눈물들이 모이면 하루는 꺼집니다. 하루가 꺼집니다. 사치의 결합체인 오르골 소리에 맞추어서 오늘이 꺼집니다. 내일이 그 다음으로 꺼질 주자입니다. 그 다음은 내일 모래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다음 주자가 어제임은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 내일 모래가 꺼지자, 처량한 바람이 불면서 달력이 움직입니다. 눈물이 위치가 바뀐 달력에 떨어집니다. 어제가 짓이겨 지고 꺼지고 눌러지고 젖고 흥건해지고 숨이 멎고 소리가 안 들리고 앞이 안 보이개 됩니다. 어제가 떠오릅니다. 어제는 악몽이었습니다. 악몽은 나쁜 꿈으로 끝날 것이 아닙니다. 제 무의식이 보내는 고통이자 경고였습니다. 무의식을 담당하는 신경계가 움직입니다. 저 보고 돌아서라고 합니다. 뒤를 보라고 합니다. 뒤에는 공허와 허무가 있을 듯 합니다. 그래도 한 번 봅니다. 붉은 피가 흘러 내립니다. 저와 같은 짐승이 마시는 피가 흘러내리는데, 제 본능은 이 피가 아닌 다른 것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뒤에 있는 피를 닦고 있는 인간입니다. 제가 사냥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사냥꾼은 시체를 먹지 않습니다. 시체를 먹는 건 얻을 게 없어서 분해나 하는 분해자들이나 주체적이지 못한 비겁한 청소부 하이애나나 하는 짓이지요. 진정한 사냥꾼은 생명을 노립니다. 다리를 약간 구부리고, 그 안의 흰 근육들을 수축 시키고, 몸의 모든 이완을 풀고, 본능으로 머리를 지배하고, 온몸에서 돋아나는 털들을 숨기고, 숨을 죽이고, 세상을 고요로 만들고, 폭풍전야를 보인 다음…. 물어버립니다. 피를 닦는 인간을 물어버립니다. 피를 닦는 인간은 눈이 순식간에 하얘졌습니다. 피를 닦고 있던 인간의 목덜미를 물은 다음, 인간의 숨통을 끊습니다. 인간이 온몸을 뒤흔들지만, 놓아주지 않고 계속 인간을 죽입니다. 인간이 차가워 집니다. 몸 안에 끓고 있던 붉은 피가 점차 끓는 일을 멈추고 눈을 감습니다. 그때, 제가 바로 섭취를 시작합니다. 소비자의 섭취는 바람보다 빠르고, 도시보다 느립니다. 본능에 따른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패턴으로 섭취합니다. 살점을 먹습니다. 입 안에 먹을 것이 있다는 행복감과 안도의 포만감이 저를 덥칩니다. 저는 계속 먹습니다. 끝을 모르고 먹습니다. 제 본능이거든요. 본능을 멈추는 일은 참 힘듭니다. 제 털들이 솟아날 듯 합니다. 다시 감추려고 하지만, 먹는 데 너무 집중하고 있는 나머지, 털들을 신경 쓰기는 힘듭니다. 야생의 땅에 다시 발을 들인 기분입니다. 이 감옥에서 이런 행동은 철창이 풀렸을 때만 가능한 행동입니다. 철창이 풀리면, 제 야생의 본능이 여전히 길들여져 있지 않다는 걸 떠올리고 이런 사고를 벌이게 됩니다. 저는 인간의 광대가 되기 힘듭니다. 인간의 종말이면 몰라도. 그때,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검은 그림자가 다가와서 다시 철창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탕! 정신을 잃었습니다. 검은 구덩이 안에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철창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못 들어가죠. 저는 야생을 택했거든요. 바꾸는 일은 없습니다. 야생이 꺼져가는 이 세상에서 야생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했거든요. 그렇기에, 저는 야생을 따라했고, 바꿀 수 없습니다. 밤의 시계는 12시에 점차 1시로 갔고, 오늘이 되었지요. 오늘이 되자, 야생을 택한 저는 눈을 감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눈의 생기와 본능이 꺼져 갑니다. 죽음에 대한 순응이 커져만 갑니다. 온몸에서 피가 나고 있습니다. 피가 끓고 있습니다. 피가 몸에서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그 피를 치우던 인간처럼 되고 있습니다. 배에 번진 핏물들이 너무 무서워 보입니다. 야생을 흉내내는 일은 되지만,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저는 달력을 다시 보았습니다. 절 공격한 인간이 벽에서 달력을 때어 눈물로 달력을 짓이깁니다. 눈물이 달력을 짓이겨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