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질퍽윤회 ―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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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4 18:36조회 198댓글 11유건
유수아 X 해 빈



- 우리 약속은 영원히 지키지 말자.

- 영원이 끝날 것 같잖아···.


그 말을 하는 네 눈은 빛나는 눈물이 가득 머금고 있었다. 언제 네가 이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잡으면 흩어지는 해변의 모래처럼 너와 나를 점점 놓쳤다. 어두워도 괜찮은 시간은 과연 언제쯤일까. 내 눈에 비친 넌 끝내 퇴색하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었다.

참 모순적인 고백이다.







유수아와 빈은 언제나 모순적이었다. 애초에 3번이나 사랑에 빠지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빈은 그렇게 생각했다. 빈이 18살이 되는 해, 유수아는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아니 누나, 나 성인되면 받아준다며. 누나가 내가 고백한 그날 그랬잖아. 난 이미 기다릴 준비가 끝났는데 누나는 또 왜 그러는데.

하지만 빈은 괜찮았다. 유수아는 15년의 우정 -한 쪽은 사랑인 것 같지만.- 을 끊고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고백을 받아준 지 -솔직히 말하자면,보류에 가깝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1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17살이나 먹고 징징 짜는 꼴이 보기 싫어서 받아주는 척 한건가? 유수아라면 그럴지도.

누나가 생각이 많아보이긴 했다. 아무래도 2살 연하는 좀 힘들어서 그런건가 하고 말았는데 잠수까지 타다니. 사람을 애타게 하는 타입이구나, 누나. 뭐 아무렴 괜찮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

천천히 돌아와 누나. 2년이 더 남았으니까.







잊었던 계절의 모퉁이에서 혹시 우리는 마주했었을까. 잠시 또, 머리를 털어내봐도 널 보면 웃음이 새어나곤해. 고장난걸까? 여름밤 축제 불꽃들처럼 쏟아져내려.


결말부터 말하자면 해빈의 고백을 받았다.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시렸던 거리에서 받아줄 결심을 한 건 일단 내가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다. 시대를 거슬러 만난 우리라니. 웹소설에 나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언젠가 할머니와 본 드라마가 너무 인상 깊었나?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뭐 진짜 운명이라던가. 그런 생각을 조금 한다고 머리가 복잡했다.


해빈이 성인이 되고 받아주겠다고 한 건 내가 곧 20살이었기 때문이다. 얘도 참 타이밍이 이상하지. 받아주기 애매한 시기에 고백을 해. 그때까지 너나 나나 기다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일단 미루고 보았다. 범죄라는 건둘째치고 내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리며 해빈을 받아준 다른 이유는 절대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너에게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뭐 물론 15년이나 붙어먹은 동생을 잃고 싶지 않은 거? 맞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사귈 이유는 아니잖아. 애초에 좀 차인다고 너가 날 떠나겠어?


물론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알게 되었다.
내가 널 사랑했기에.

20살이 되어 얼마 없는 수영장 친구들과 조촐하게 술파티를 벌이려 하고 있었다. 코치님이 사주신 소주와 육포, 아이스크림을 까며 헛되게 흘린 십대를 아쉬워했다. 이런 것도 좀 해볼 걸. 이렇게 끝날 줄 알았냐는 둥의 말을 하던 그때, 시계가 12시를 넘겼다. 다같이 서로의 20살을 축하하려던 그때.


촤르륵―

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
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
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촤르륵


익숙한 기시감이 들었다.

해빈에겐 미안하지만 잠수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아주 낡은 기억이 나를 반겼다. 그 기억에 잠식되어 눈 앞이 킴캄했다. 도저히 해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유수아의 트라우마는 바다도, 물도 아니었다. 해빈, 이은채 그 자체가 유수아에겐 트라우마였다. 기억의 한켠을 유수아는 절대 열어볼 수 없었다.


너와 나는 끝내 빛나지 못했는데, 너는 여전히 빛나 보였으니까. 잊혀지겠지. 언젠가 꾸었다가 깨어난 꿈처럼,

잔향은 결국 사라지는 쪽을 택하겠지.


또 다시 여름은 왔다. 무더위 아래에서 빈은 유수아를 마주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그녀를 맞이하기 까지 해빈에겐 얼마나 많는 정이 필요했을까. 유수아가 전할 이야기는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단 한 사람, 해빈만 제외하고 말이다. 유수아는 그날의 약속을 기억했다.

그럼에도 해빈은 물었다.
그럼에도 이은채는 물었다.


- 약속을 지켰더라면?


하지우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철석같이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내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돈다고 의심 없이 확신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모든 착각을 청춘이라 부른다면, 내가 어리석은걸까. 그래서 나는 멋대로 청춘을 정의해 보았다. 나는 내 멋대로 청춘을 해석했다. 널 잡은 내 손을, 네 손에 들린 향수를, 우리의 계절을 청춘이라고 속이자.


- 우린 죽지 않았겠지.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그 이유는,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윤회 輪廻
청춘의 계절은 윤회를 거듭하니,

하지우 X 이은채




- 너와 나는 다시 바다에서 만났을거야.
- 우린 운명이 아니니까.

- 사랑은 윤회 輪廻 한다.


분명 일행은 10명이 넘었다. 남은 건 우리지만. 모처럼 다같이 2박 3일을 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날, 16살의 이은채는 똥개의 면모을 보여주며 시원하게 늦잠을 잤다. 이불 속에 처박혀 11시까지 코나 고는지도 모르고 혼자 낙오되어 이은채를 찾아다녔다. 그 결과 마주한 건 엉엉 우는 똥개.


어쩌겠는가, 기차는 이미 보냈고 다음 기차는 저녁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겨울에 기차로 2시간 거리에서 노숙하게 생겼다고. 이 팔자 좋은 개새끼야. 이은채는 그딴 건 산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둥 헛소리를 했다. 겨울 바다의 낭만을 즐기라나 뭐라나. 3일을 여기 묵으면서 쳐다도 보지 않은 겨울 바다의 낭만.. 뭐 어쩌구를 강제로 즐기게 생겼다. 이 김에 개새끼 사진이나 더 찍어주지 뭐.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온 여행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이은채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살면서 처음으로 간 여행이라 그런 것도 있었다. 5시간. 예상치 못하게 연장된 여행은 딱 5시간이었다. 그런 말이 있다. 사람은 기억에 박제된 조금의 순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뭐 콘서트라던가, 아니면 잊지 못할 선물. 하지우에게 그 5시간은 두고두고 반추하는 하지우의 일부가 되었다.


거금을 주고 산 구기종 아이폰으로 바다 사진을 여러 장 짝고 빈티지 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아니 뭔 카메라가 이렇게 많아. 이 미친 낭만주의자. 이은채가 빈티지 카메라로 바다의 자갈이나 조개, 윤슬 넘치는 바다를 찍는 동안 나는 다른 카메라를 들고 대기했다. 이리저리 만지다 보니 조작법이 눈에 보였다. 이런 카메라야 뭐 뻔하지. 바다 앞에 선 이은채는 나에게 윤슬이었다.

찰칵―


필름 모자란데 뭐하는 짓이냐며 신경질 내는 이은채는 무시하고 그 얼굴을 한번 더 찍었다. 위로는 아직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흰 필름이 올라왔다. 날 잡으려는 이은채를 피해 그 추운 바닷가를 뛰어다녔다. 차가운 모래 사이로 발이 푹푹 파였고 어쩌다 밟은 물결에 물방울이 너와 내 얼굴로 튀었다. 이은채의 흰 옷이 겨울 사이로 나풀거렸고 얼굴과 손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우리의 겨울은 아스러졌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은채의 플리를 나눠 들으며 창문 밖 휘어지는 풍경을 구경했다. 나무가 달리고, 건물이 달리고, 우리가 달렸다. 하지우의 머리 속엔 아직도 빛나던 바다가 일렁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선 이은채가 일렁였다. 우리 겨울은 톡 건들이면 푸른 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두운 밤의 불꽃들처럼 쏟아져내려.


- 푸르게 빛나는 너만을 비추는
- 오색빛 빛나는 바다가 보여

- just ride 네 옆에 있을거니까

- let's go the see only you and me
- you can see only


수백번을, 어쩌면 수천번을 윤회할 여름이었다. 하지우와 이은채가, 또 유수아와 해빈이 윤회할 여름. 또 다시 반복하고 또 다시 살아갈 여름에 분명 그날의 바다가 있다. 비록 겨울이라도,

분명 네 눈에서 바다를 보았다.


- 우린 돌아갈 수 없어도,
- 계절은 다시 오니까.

- 우린 영원할거야. 약속이 사라져도.



https://curious.quizby.me/ugun…

^ 퇴고 없어요 후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BGM 01 고장난걸까 - 10CM
BGM 02 바다가 보여 - 명재현 (미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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