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IMP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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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3 17:34조회 77댓글 0자울자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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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해요? ”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낡은 이자카야겸 칵테일 바. 늘 그렇듯 코스모폴리탄을 주문했으나 사실 딱히 칵테일이 당기지는 않았다. 그저 바텐더와 사담이라도 간단히 나눌 목적이었으니까. 일부러 젊은 남녀가 많이 모이는 클럽에 가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 소음 때문이었다. 마음에 드는 남자도 없을 뿐더러.

“ 왜요, 놀아주시기라도 하시게요? ”

이런 낡은 바엔 나만 오는 줄 알았는데, 며칠 전부터 한 남자가 눈길이 밟히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지만 어딘가 비릿한 미소를 기본값으로 달은 채 나만을 계속 응시하던 남자. 입 밑과 귀엔 피어싱을 주렁주렁 매달곤 항상 나를 바라보곤 한다. 물론 그런 모습이 한없이 짜증났지만.

“ 재밌게 해 줄게요. ”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는 누군가 만지라고 길러둔 것이 아니다. 나는 남자가 손아귀에서 갖고 놀던 머리칼을 빼앗아 앞으로 정돈했다. 남자는 이젠 내 쪽으로 턱을 괴어 앉아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쏟아내었다.

“ 이름은 뭐야? 나이는? 어디 살아? 너 되게 예쁘다. 이런 구닥다리 바에서 너 만큼 예쁜 사람은 처음이네. ”

매번 뻔하고 불순한 의도가 보이는 작업 멘트. 저런 하등한 것에 넘어갈 만큼 내가 헛되게 살진 않았을 거다. 대충 말이나 좀 섞고 돌려보낼 생각으로 가벼운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 선세화, 스물하나. 저기 보이는 세렌데일에 살아. 이정도면 답변은 됐지? 혼자 즐기고 싶으니까 좀 가주면 고맙겠네. ”

세렌데일이란 말에 남자는 흥분해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 세렌데일? 세렌데일이라고? 진짜야? ”

세렌데일, 그냥 한국 최대 연예인이나 돈 깨나 번다는 놈들만 들어가는 아파트 같은 이미지다. 나는 엄마와 함께하는 그 세렌데일을 지독히 싫어했지만, 남들이 보기엔 아마 엄청나게 잘 사는 부잣집 딸내미로만 보여지겠지. 남자들이란 모두 뻔하다. 돈 많고 예쁜 여자에게 끌리고, 돈이 없고 못생겨지면 버린다. 그래서 나는 남, 특히 남자들을 믿지 않는다. 더럽고 역겨운 새끼들에게 기댈 바엔 자살이 나았다.

“ 진짜겠지. ”

너무 외향적인 사람에겐 기가 빨려지는 스타일이라 남자와도 깊게 연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자도 그 의도를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옆자리에 착석했다.

“ 나는 백매화. 그리고 스물넷. 내가 오빠네? ”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니 알 것 같았다. 짙은 흑발에 더 짙은 흑안. 입술은 얇은 것도, 통통한 것도 아닌 적당한 두께감. 딱 여자들이 환장해 매달릴 미남상. 남자와 생애 처음으로, 한 번은 어울려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내 자신에게 가스라이팅이란 건 알았지만 이 생각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나쁜 걸 알면서도 계속 진행하는 살인마처럼.

“ 딱 봐도 모범생 같은데, 나랑 같이 광란을 즐겨볼 의향은? 아직도 없어? 내 얼굴로 안 먹힐 수가 없는데. ”

“ 불순한 의도로만 다가오네. 원래 남자들은 다 이래? ”

나의 말에 남자는 잔뜩 눈을 찡그리더니 나의 다리에 발을 살짝 걸치며 물었다.

“ 뭐야, 처음이야? ”

남자의 말에 승부욕이 불타올랐던 탓일까, 살면서 한 번도 했던 적 없는 거짓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 아니, 고수지. ”

멈춰 있던 지독한 악연, 인연, 우연이 재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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