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7 21:13•조회 59•댓글 3•.
“그럼 나 오기 전까지는 뭐 하고 있었어?”
슬이 벤치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개미를 보고 있었어.”
“개미?”
“응. 작은 개미가 작은 과자 부스러기를, 그래도 자기보단 몇 배나 더 큰 과자 부스러기를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어.”
“개미는 결국 들었어?”
“곧 들 수 있을 것 같았어.”
그 말에 우린 다시 개미를 구경하러 갔다. 작은 개미가 작은 과자를 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자기 몸보다 몇 배는 무거울 과자 부스러기를 의기양양하게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개미는 없었다. 어디 갔냐, 고 물으니 슬은 아무런 대답 없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오래는 볼 수 없을 것 같아 얼른 시선을 돌렸다. 바닥엔 사람이 먹다 흘린 것 같은 조그마한 과자 부스러기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난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자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제일 작은 과자 부스러기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탄식을 뱉었다. 그게 개미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우리 묻어주자.”
내가 말했다. 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미가 깔린 과자를 들어올렸다. 과자덩어리는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고작 이 과자 따위에 한 생명체가 눌려 죽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슬은 아무 말 없이 항상 들고 다니는 손수건을 꺼내 개미를 조심스레 들었다. 개미 사체가 손수건 위에 놓였다. 저녁인데도 선명하게 보이는 개미 사체는 그 어떤 벌레보다 징그러워 시선을 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강에 시체를 묻는다는 게 꽤 질겁할 행위이긴 한데, 개미니 괜찮겠지 싶었다. 우리는 개미 묻을 곳을 꽤 오랜 시간 찾아다녔다. 마땅한 곳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난 옳은 묫자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슬은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어느 곳으로 곧장 걸었다. 그리고 아주 커다란 나무 밑에 구멍을 파 그곳에 개미 사체를 집어넣곤 흙으로 묻었다. 흙으로 묻은 곳이 망가지지 않도록 손으로 세게 눌러줬는데, 개미는 관 없이 묻혔으니 어쩌면 지금쯤 몸이 아스라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묻어주지 않는 게 더 좋았을까. 죽은 개미의 말은 들을 수 없으니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산책로를 달리는 동안 평소보다 더 많이 웃었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 삼십 분 늦게 집에 도착했다. 슬과 함께였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게 웃겼는데, 혼자가 되니 배를 까뒤집고 손수건 위에 가만히 누워있던 그 벌레가 자꾸 생각나서 미칠 것 같았다. 개미를 생각하고, 슬을 생각하고, 다시 개미를 생각하고, 슬을 떠올렸다. 기분이 조금 괜찮아진 듯 싶었다. 어째서 슬의 얼굴에 개미가 겹쳐 보이는 건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