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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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7 22:20조회 13댓글 0Garri
-안녕하세요? 친절하게
-안녕하세요? 위협적이게
-안녕하세요? 천진난만하게
-안녕하세요? 형식적이게
-안녕하세요? 우울함에 찌들어 있다 잠시 힘을 내어
-안녕하세요? 지치고 지친 인생의 끝에서 천사에게 말 하듯이
-안녕하세요? 불에 타들어 가는 단란했던 가정의 검은 재를 모아 다시 가족을 만들어 내는 구원자를 망상하는 리플리 증후군 환자의 목소리 한 갈래처럼
-안녕하세요? 모든 걸 포기하고 망연자실해 있는 주인공에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부드럽게 건내는 여주인공의 대사처럼

이게 전부 한 인물에게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그 한 인물인 나는, 배우로도 불렸다. 내가 왜 배우인 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매우 평범하고 흔해 빠졌으며,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열 수 앞 정도는 척척 계산이 가능한 뻔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나를 향한 모든 것들은 경악이 아닌 비소여야 한다. 내가 강한 자 앞에서 세상 안타까운 소녀 연기를 하다가 돈 없는 인간 앞에서 거인을 연기하였다는 소문은 제발 본성 따위는 잃어 버린 황색 언론 가득한 기자들이 어찌저찌 찾은 자극적인 제목 정도로만 알아 주면 좋겠다.

내 직업 목록 또한 매우 평범하게 시작하였다. 나는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부모님 또한 같은 직업을 하셨고, 나는 부모님의 가게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는 더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하는 선구자이자 시작의 종소리였으니, 나 만의 건물들을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텅 빈 공터조차도 나의 현란한 혀의 놀림 몇 번이면 곧 아름다운 신식 아파트로 채워졌다. 흰 벽 사이 갈라진 틈새들은 보이지 않았고, 아무리 강력한 태풍이 불어도 나의 고객님 만큼은 지켜 줄 콘크리트 벽이 좁디 좁은 고객님의 마음을 감쌌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내 줄 영혼의 동반자이자, 힘든 고통을 같이 견뎌 줄 건물을 보여주었더니, 고객들의 눈이 반짝였다. 젖은 별 휘날리는 좁은 창가 너머는 울창한 나무들이 슬그머니 나타나 있었다. 비싼 돈을 내고 숲을 거닐며 피톤치드니 뭐니 할 거면 한 번 보기를 바라며. 다시 객관적인 눈으로 가면 텅 빈 공터가 된다.
이것으로 나의 부동산 관련 업무들은 끝났다. 그 다음은 인공지능의 손을 약간 빌렸다. 인공지능은 곧 현란한 말을 하는 앵무새이자 인간을 창조하고 조낙하며 편집하는 신의 손이었다. 나는 그러한 인공지능이 사람의 아픈 손가락을 물어 뜯을 동안, 멀끔한 정장 입고 회사에 취직하였다. 그냥저냥 평범하고 재미 없는 증권 회사에서 수십 시간을 보낸 결과, 인생이 진부해 질 뻔하였지만, 다행히도 인공지능이 낚아 준 사람들과의 대화 몇 번 만으로 내 인생은 다시 꽃 핀 정원이 되었다. 푸른 장미가 내 새로운 가족들에게 보이면 나는 꺾어다 주었다. 가시 하나하나가 그들을 찌르는 일 즈음은 넘기며.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부동산 사기고 뭐고 딥페이크고 뭐고 집어 던져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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